위험의 '외주화·이주화' 막는 사회적 의지 [한국의 창(窓)]
산업 현장의 계속되는 인명 희생 사고들
위험에 더욱 노출된 외국인, 청년, 여성
노조가 핵심 역할인 민간 거버넌스 필요
대형 사고 소식이 유난히 많은 여름이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사람들이 허망하게 스러졌다. ‘사고’의 사전적 의미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고가 예측 불가는 아니다. 경험과 통계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스템 상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사회적 사건이다.
한밤중에 300여 개의 배송을 10시간 노동으로 감당하던 쿠팡 로켓배송 하청노동자 정슬기씨의 죽음,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물질인 리튬 배터리를 제대로 된 안전교육 한 번 받지 못하고 다뤘던 아리셀 공장 노동자들, 특히 하청, 불법파견, 일용직 노동이 뒤엉킨 형태로 투입되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그래서 ‘사고’일 수 없다. 언제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유지한 직·간접 고용주들은 물론이고 이를 방치한 정부와 사회도 모두 이 사건의 가해자다.
한국 사회와 정부가 일터의 안전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요 산업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던 한국의 산업재해 수준은 지난 20여 년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르기까지 강화되어 온 제도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한국의 재해율은 여전히 높다. 높은 재해율만큼 중요한 것은 재해 발생이 불평등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2020년 발생한 882건의 사망사고 재해는 소규모 사업장 중고령 임시 일용 노동자에 집중돼 있다. 건설업 현장 사고가 많은 영향이다. 제조업 사망 재해는 감소 추세지만 여전히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공장 노동의 대부분을 외국인 청년과 여성들이 채우고 있으므로, 이들이 재해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계속 높아져 왔다. 2020년 재해 사망자 중 외국인 노동자가 10.7%를 차지했는데,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중(3~4%)에 비해 크게 높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2019~2021년 발생한 중대재해 중 35%는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났다. 이렇듯 ‘위험의 외주화’에 ‘위험의 이주화’까지 더해진 구조적 불평등 위에서 이번 아리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산업 재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공학만이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뿐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최근 재해의 현장은 급격하게 건설과 제조업으로부터 유통 및 통신업으로 전환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디가 현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모든 삶의 장소에 존재하는 플랫폼 종사자들 때문이다. 우중 배달에 대한 프리미엄 지급 논란에서 보듯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 노동을 단 몇백 원, 몇천 원의 대가로 구입하려는 시도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위험을 알고도 배달에 나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뒤에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는 사회 구조가 있다.
무서운 것은 반복되는 재해에도 계속 방치되는 사각지대와 방관적 태도다. 방법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공장 단지 붕괴로 1,134명이 사망하고 2,500여 명이 다친 ‘라나플라자 참사’를 떠올려 보자. 사고 한 달 만에 다수 글로벌 브랜드와 글로벌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화재 및 건물 안전에 관한 협약(Accord on Fire and Building Safety in Bangladesh)’을 체결했다. 노동자 안전과 노동권 간 관계를 간파한 이 협약하에서 광범위한 위험성 평가와 교육이 실시되고, 산업안전 여건이 획기적으로 나아졌다.
다수의 관련 연구는 성과의 주된 요인으로 노조가 핵심적 역할을 한 민간 규제 거버넌스의 효과를 강조한다. 노조의 형식적 참여를 막기 위해 노동자 대표에 체계적 교육을 실시하는 등 실질적 대안도 중요했다. 탄탄한 제도 위에서 정부 집행력의 한계를 보완할 중층적 거버넌스의 작동. 우리도 이런 노력을 시작해 볼 수는 없을까. 그런 의지도 관심도 없다면, 구조적 ‘사건’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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