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의 평화와 저탄소 꿈의 실현

진상현 경북대학교 교수 2024. 7. 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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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發光] 우크라이나 전쟁의 나비 효과, 탄소중립과 한반도 안보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푸틴 정부는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호칭하며, 공식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렇지만 2023년 전후로는 러시아 대통령까지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21세기에 벌어진 국가 간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여전히 종결되지 않고 있다.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은 처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1991년 구(舊)소련의 해체 이래로 크림반도의 영향력 확대 과정에서 발생해왔던 일련의 사태 가운데 하나로도 볼 수 있다. 다만 한동안 잠잠했던 이 지역은 2014년 이후부터 세계의 화약고 가운데 하나로 불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인 나토의 동진과 동유럽 국가들의 친(親)서방화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의 극단적 대응이 지금의 전쟁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여러 차례의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2006년에 가스 가격의 협상 결렬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공급되던 파이프라인을 러시아가 차단하려는 바람에, 독일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위협에 처했던 사례가 있었다. 이후로도 2007년, 2009년, 2014년, 2019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가스관과 송유관을 담보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되곤 했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이었던 2021년 12월에는 천연가스 공급을 일부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이처럼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구조적 원인이 내재한 상태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잠재적 갈등이 간헐적으로 표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과 미국이 적절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결국에는 전시 상황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한국은 이번 사태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다. 왜냐하면 유럽이야 원래부터 1·2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일 정도로 정치·군사적 갈등이 빈발한 곳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 공식화되었던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이 동일한 위험 요인을 지니고 있다며 잠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역시도 북한의 비협조로 실현되지 못하면서, 한반도와는 무관했던 '세계는 지금'의 한 코너로 간주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한국과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최근 들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탈원전·탈석탄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되었던 나라가 독일이었는데,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등장하면서 국내 찬핵 세력의 비난 근거가 되었다. 즉, 어설프게 탈원전을 추진했다가,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천연가스 공급원을 한국이나 일본처럼 중동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논의됐었다. 다만 독일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에 대한 중독과 러시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정치적 자신감이 문제였다.

게다가 독일의 위기는 온실가스 목표 달성의 어려움과도 관련된다. 실제로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년도마저 2045년으로 선도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가 독일이다. 그렇지만 천연가스 수급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금은 석탄 발전의 가동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행히 석탄 소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 및 경기 침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직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 입장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독일의 사례는 탄소중립 목표를 공유하는 한국에게 간접적인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에게 찻잔 속 나비의 날갯짓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금은 태풍으로 바뀌어서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푸틴 대통령은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다. 그전에도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부족했던 군수물자와 무기를 북한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단순한 협력관계 증진 혹은 양국 정상의 답방 정도로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양국의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안보 지형을 흔들어놓고 있다. 즉, 70년 넘게 휴전상태인 남북 관계에 러시아가 '전략적 동반자'를 선언하며, 유사시 북한에 대한 자동적 군사개입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탈원전·탈탄소 독일을 흔들어놓은 다음에, 한반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쌍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연합뉴스

만약에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이 한반도에서 발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가 위급하고 국민들의 목숨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는 전시 상황에서는 나머지 다른 가치들이 전부 사장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위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그렇듯이 기후위기는 언급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는 전쟁과 상충될 수밖에 없으며,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은 한반도의 평화와 함께 달성되어야 한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전쟁의 포기를 약속했던 '부전조약(不戰條約)'을 1928년에 선언했으며, 주요 열강을 포함한 63개국이 동참했던 전례가 있다. 이처럼 인류 최초의 반전 협약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계기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평화 조약은 위반 국가에 대한 제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1992년에 체결된 기후변화협약도 감축 의무가 누락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나마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을 통해 실행력을 강화해나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온실가스 규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지구 반대편 한국의 평화와 남한의 탄소중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현재 한반도는 평화와 저탄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존 레논이 꿈꾸었던 이상을 우리는 이 땅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둘 다 단순한 꿈일 뿐이라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내고, 기후변화 위기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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