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구독과 좋아요’… 언어·국경 극복한 K컬처의 新성공법칙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2024. 7. 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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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MZ 10억명, 감탄할 만한 경험 만나면 ‘구독과 좋아요’ 클릭
나스닥 상장한 네이버웹툰·트레이더 조가 주문한 냉동 김밥 230톤
대중문화에서 음식 생태계까지 확장… 문명 대전환기, 도전 필요하다
지난 2021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BTS 공연 장면. /연합뉴스

AI 시대를 맞아 쩐의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세계 20대 기업중 AI 관련 기업 시총만 모아봐도 거의 3경원에 이를만큼 자본 쏠림도 엄청나다. 2000년 있었던 닷컴 버블 이후 처음 보는 현상이다. AI 시대를 만들 거대한 에너지가 준비된 셈이다. 그런데 닷컴 버블의 기억을 소환해 보자. 엄청난 자본이 쏟아졌지만 매출로 성과를 내지 못한 기업들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결국 AI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근간에 AI를 탑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를 내느냐 못내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새로워진 디지털 소비 생태계 성공의 법칙을 살펴야한다.

그래픽=백형선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디지털 신대륙의 시민들은 국경에 대한 개념이 없다. 토종 플랫폼인 네이버, 카카오 뿐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글로벌 SNS 플랫폼 활용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커머스플랫폼까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우리 뿐만 아니다. 세계 최대 시장 미국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우는 10억명의 전세계 MZ 세대들에게 이미 국경이나 언어장벽은 무의미하다. 이들을 사로잡는 새로운 시장의 지배법칙은 ‘구독과 좋아요’를 부르는 ‘감탄할만한 경험’이다.

그래픽=백형선

최근 김준구대표가 키운 네이버웹툰이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우리나라 웹툰 플랫폼의 성공은 전세계 10억명을 사로잡은 젊은 작가들의 활약 덕분이다. 네이버가 미국 증선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100위 작가들의 평균수익은 13억8천만원에 달한다. 1억 4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작가만도 483명이다. 과거 몇몇 유명작가에만 매달리고 몇몇 출판사가 좌지우지하던 만화업계를 생각하면 10억명의 디지털 내수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실감할 수 있다. 디지털 신대륙 소비시장의 매력은 단지 크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동되어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된다. 일단 히트한 웹툰은 반드시 드라마로 제작된다.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IP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그래픽=백형선

이 문화 생태계는 최근 푸드 시장으로까지 확장중이다. 지난 해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냉동 김밥의 출발점은 놀랍게도 ‘더글로리’, ‘이상한변호사 우영우’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에 아이콘으로 등장한 김밥에 전세계 수억명의 드라마 시청자가 호기심을 보였고 이를 확인한 전세계 먹방 유튜버, 틱토커 들이 엄청난 김밥 콘텐츠를 쏟아냈다. 틱톡에서만 해시태그 김밥(#kimbap) 이 13억개가 나왔을 정도다. 그러자 미국의 식품 유통업체가 나섰다. 트레이더조라는 미국 유기농 식품유통업체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K-food 박람회에 직원을 파견했고 거기서 구미에 위치한 올곧 식품회사의 사장님을 만나 냉동김밥 230톤을 주문한 것이다. 이 김밥은 미국에 김밥 열풍을 일으켰다. 라면, 김에 이어 김밥까지 K-food 열풍에 탑승한 것이다.

전세계 K-팬덤 열풍의 원조는 K-pop이다. 싸이가 반짝 떴을 때 금방 사라질거라던 K-pop은 아예 전세계 청년들이 즐기는 문화의 한 장르가 되었다. 싸이, BTS, 블랙핑크 등으로 이어진 팬덤은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출현으로 탄탄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 음악에 대한 관심은 다시 드라마와 영화로 이어져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 자발적 팬덤은 이제 패션, 뷰티, 푸드 등 다양한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중이다. 최근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절대 불가침이라던 농심의 시총을 훌쩍 넘어섰다. 대한민국 대표라면 ‘신라면’을, 디지털 신대륙 대표라면 ‘불닭볶음면’이 넘어선 상징적인 사건이다.

관련 산업도 쑥쑥 동반 성장중이다. BTS를 키운 하이브는 8조 기업이 되었고 JYP(2조), SM(1.8조), YG(0.7조)가 뒤를 잇고 있다. 비비고 브랜드로 한식열풍을 이끌어 온 CJ제일제당은 5조5천억 기업이 되었고, 불닭볶음면 삼양식품도 어느새 4조5천억 기업으로 성장했다. 농심(2.7조), 오뚜기(1.7조) 등도 선전하며 뒤를 이어 성장중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수많은 뷰티, 패션, 푸드 관련 중소기업들이 K-팬덤 열풍에 힘입어 신생 브랜드로 거침없이 메타세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동김밥 열풍의 주인공 구미의 ‘올곧’도 작년 대비 매출이 10배가 늘었다고 한다.

지난 몇년간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나라 전체가 침체를 겪었던 걸 생각하면 산업 다양성을 갖추는건 국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산업생태계가 건강하려면 기술 중심의 글로벌 대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중소 벤처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지금의 K-팬덤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주목할 것은 지금 10억명의 MZ 세대들에게 거대한 팬덤을 일으키는 우리 문화 산업은 과거 문호를 개방하면서 홍역을 겪었던 산업들이라는 점이다. 우리 대중음악은 경쟁력이 약해 미국, 일본에 개방하는 순간 모두 붕괴될거라고 막아섰다면, 우리 드라마-영화산업이 경쟁력이 약해 절대 개방하면 안된다고 막아섰다면, 국내 만화시장은 영세해서 개방하면 안된다고 규제로 막아 세웠다면 결코 지금의 달콤한 K-팬덤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김밥이나 라면도 국내용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의 기적같은 성공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결코 혁신의 열매도 얻을 수 없다. AI와 같은 하이테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기업의 성장은 소비자의 팬덤이 결정한다. 팬덤을 부르는 실력만 갖췄다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곳이 디지털 신대륙이다. ‘구독과 좋아요’가 기준이라면 해볼만하지 않은가? 김밥이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시대라면 도전해 볼만하지 않은가? 문명의 대전환기, 세계 시장을 향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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