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캉 폭력 사건’ 피해자 어머니 진료기록까지 보겠다고?

한겨레21 2024. 7. 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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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너머n']‘바리캉 교제폭력 사건’ 1~2심 모니터링해보니… 가족까지 끌어들여 추가 가해
일명 ‘바리캉 교제폭력 사건’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된 뒤 쌍방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이 함께 쓰는 서울 서초구 법원 건물 모습. 박승화 선임기자

“피해자 모(어머니)에 대한 사실조회(진료기록) 신청을 기각한다.”

일명 ‘바리캉 교제폭력 사건’으로 알려진 김아무개의 항소심 재판에서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다. 2심 들어 검찰이 범죄사실 중 강간·감금·폭행을 모두 치상으로 바꾸면서 피고인 쪽이 범행과 상해(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인과관계 성립을 부정하고자 사실조회를 신청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에 피해자 어머니가 포함됐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가족까지 끌어들여 가해를 멈추지 않는 교제폭력의 특징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 신청은 ‘교제 당시 피해자가 어머니 이름으로 진료받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 같다’는 피고인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것이어서 재판부가 기각했다.

선고 직전 감형 노린 억원대 공탁금 내

사법시스템을 통해 교제폭력을 다루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추가/파생 가해에 노출되기 쉽다. 이 사건도 1심에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폭행을 감내하고 오피스텔을 구했고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응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이 영상으로 남은 일부 폭행 사실을 제외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부인했기에 피해자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법정에 나와 증인신문을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피고인의 주장을 토대로 피해자를 공격하던 검찰 출신 피고인 변호인은 증인신문 도중 피해자에게 ‘(내가) 2차 가해를 한 것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시민 탄원서를 모아서 제출한 적 있는데, 재판 방청을 한 활동가들이 피고인 변호인의 변론 전략에 대해 문제점을 짚었던 것에 기분이 상했다는 취지다. 피해자는 피고인 변호인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네’라고 답했다. 하지만 반대 신문을 빙자한 피고인 변호인의 ‘취조’로 인해 피해자는 증인신문 종료 뒤 법정에서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갔다.

1심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피고인은 반성문을 네 차례 제출하고, 선고 전 억원대를 기습공탁했다.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도, 피해자가 합의/공탁 등에 부정적인 입장이어도, 피고인의 ‘금전을 통한 피해 복구 의지’만 재판부에 전달하면 선처가 가능하다는 이전 사례들에 근거한 전략이었다. 피해자 변호사가 이를 피해자 가족에게 즉각 알렸고, 피해자 아버지는 곧바로 법원에 자필로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박옥희·지예현·이지은 판사)는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공탁을 한 점과 일부 범행을 인정했음을 들어 검찰 구형(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쌍방이 항소한 상태에서 피고인은 2심 첫 재판 전 변호인단을 교체했다. 1심에서 검찰 출신 변호인을 선임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인지, 2021년 퇴직한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 변호인 등을 선임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어렵게 되자 2심에서는 강간치상을 제외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하며 읍소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반성문, 장기기증서약서, 재범방지서약서, 봉사활동계획서, 독후감, 감사문(감사 쓰기) 등 온갖 부당 감형자료를 제출했다. 피고인 변호인이 서울고법 판사로 재직할 때 이런 자료를 양형에 반영했다는 얘기일까.

누구를, 무엇을 위한 ‘반성문’인가

‘꼼수 감형자료’로 불리는 부당 감형자료(제1422호 ‘성범죄자가 결혼하면 형량 깎아준다고?’ 참조)는 성범죄 가해자를 조력하는 법인들이 목록을 만들어 공유한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구속 상태이기에 정신과 진료기록, 각종 진단서, 성범죄 예방교육 등 자료는 제출 못했으나, 그 외 자료는 모두 활용했다. 장기기증서약서의 경우 텔레그램 ‘박사방’의 강훈이 2020년 제출한 이래 거의 보지 못했는데, 판사 출신 변호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이런 자료들이 무용하거나 실제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법조인들 주장이 힘을 잃는 지점이기도 하다.

반성문만 해도 현직 변호사가 에스엔에스(SNS)에서 여전히 유용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업무 중 하나가 반성문 작성이라고 할 정도니 피고인들이 포기할 리 있겠는가. 이렇게 변호사가 작성한 반성문은 재판부를 향한 것이지 피해자를 향한 게 아니며, 피해자가 이를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점은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범죄’ 사건 2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피해자가 반성문에 대한 열람/복사를 신청했으나 재판부가 계속 불허했다.)

바리캉 교제폭력 사건 2심 첫 재판에서 피고인 변호인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합의를 제외하고 피고인 쪽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성폭력 상담기관에 기부·후원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피해자 부모와 피해자 변호사들, 성폭력 상담기관 활동가들이 모두 있었음에도, 심지어 공소사실 중 강간치상은 부인하면서도 말이다. 피고인 변호인은 또 피해자 가족에게 접근해 공탁금회수동의서를 공탁소에 제출해 피고인이 공탁금을 찾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고로 귀속되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자신들이 공탁금을 찾아가서 ‘좋은 일’(성폭력 상담기관 기부·후원 등)에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성폭력 상담기관들이 부당 기부·후원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며 가해자 기부·후원을 확인하는 즉시 반환하는데도 말이다.

피고인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해자 쪽에 공탁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자신들이 추가공탁을 할 것인데 피해자 쪽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이를 기습공탁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냐면서 말이다(이미 추가공탁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그게 왜 기습공탁이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나보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고통을 안긴다 해도 결국 돈(공탁)이면 피해 복구가 가능할 것 아니냐는 피고인 변호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판이었다. 공탁하면 형량 거래가 가능하다는 피고인 쪽의 이런 전략이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피고인 전략을 감시·기록하는 연대 활동

이제 항소심은 결심과 선고공판을 남겨놓은 상태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을 모욕하고, 선택을 강요하며, 각종 부당 감형자료로 선처를 구하는 피고인 쪽 전략에 맞서 이 과정과 결과를 감시·기록하기 위해 서울고법으로 간다. 피해자 증인신문을 포함한 재판 전 과정을 공개하고, 언론에 적극 대응하며, 매 공판 방청석에 앉아 있는 피해자 부모,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대응하는 피해자 변호사들, 공판 전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피해자를 조력하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 그리고 ‘피해자 곁에 있는 한 사람’이 되고 싶어 참여하는 시민들과 함께.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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