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떠난 자리 파고든 외국인…국내 증시 비중 36% 넘었다
밸류업 정책·환율·반도체 호황 등 영향…‘셀코리아’ 땐 충격 우려
올 상반기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사상 최대 규모로 유입되면서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6%를 돌파했다. 내국인이 수개월 연속 이탈한 ‘국장’(국내 증시)을 외국인이 떠받치는 모습이다. 이는 외국인이 ‘셀(sell) 코리아’로 돌아설 경우 국내 증시가 충격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기준 코스피시장의 외국인 보유액은 844조5900억원으로, 시가총액(2339조6800억원)의 36.1%를 차지했다.
지난해 31~32%를 오가던 외국인 보유 비중이 36%까지 오른 건 외국인 순매수세가 8개월 연속 지속되면서다. 올 상반기 외국인의 상장주식 순매수 규모는 총 22조9000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반기 기준 역대 최대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가 7조4000억원을 순매도하며 생긴 공백을 외국인이 메워준 셈이다.
외국인 유입세에는 크게 3가지가 작용했다고 시장은 본다.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원·달러 환율 상승,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다.
개선된 반도체 업황과 원화 가치 하락은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기 마련인데 올 상반기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과거 신흥국 화폐와 동일시됐던 원화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실적 중심으로 투자가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는 “달러당 1500원까지 갈 만큼 한국의 기초체력이 약하진 않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투자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랠리의 수혜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외국인 투자가 집중됐다. 두 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56%가 넘는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도 매수세에 불을 지폈다. 밸류업 정책의 수혜주 중에서도 KB금융은 외국인 보유 비중이 76%로 1년 전보다 4%포인트 넘게 올랐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이 밸류업 정책을 추진했을 때 외국인들이 늦게 들어가면서 주가 상승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며 “한국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심리로 상반기부터 매수세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높아지는 외국인 비중은 리스크를 키우기도 한다.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경우 국내 증시가 흔들리는 이른바 ‘윔블던 효과’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하반기 외국인 투자 향방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오는 9월 결정될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여부가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금융투자자협회는 WGBI에 편입된다면 외국인의 국채 투자가 50조~60조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데, 환차익을 노린 자금이 국내 증시에 더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하반기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높고, 당분간 순매수 기조가 바뀔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을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WGBI 편입이 호재는 맞지만 원화·엔화·위안화가 약세인 상황 등을 종합하면 원·달러 환율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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