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예와 정도 갖춘 조상들의 술 문화는 어디로 간 걸까

기자 2024. 7. 9. 2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례> 향음주의조(鄕飮酒義條)에는 “향음주례를 가르쳐야 어른을 존중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것을 알며, 효제(孝悌)의 행실도 실행할 수 있고, 귀천의 분수도 밝혀지며, 주석(酒席)에서는 화락하지만 지나침이 없게 되어, 자기 몸을 바르게 해 국가를 편안하게 하기에 족하게 된다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술은 한자리에서 세 번 이상 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술이란 억지로 권하거나 마시지 않아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알고 마셔야 올바른 행실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상들은 일생 의례인 관(冠), 혼(婚), 상(喪), 제(祭) 중 처음 맞이하는 관례인 성년례에서 술 예절을 가르쳤다. 성년례는 아이가 자신과 가정, 사회에서 책임과 의무를 실천하는 성인의 나이로 나아가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주변에서 가장 덕망 있는 어른을 모시고 거행하는데, 어른은 성년자에게 술잔에 9부를 따라 주며 ‘술은 향기로우나 과하면 실수하기 쉽고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분수에 맞게 마셔야 한다’라는 훈시를 내린다. 성년자는 술을 받아 든 후 술을 지우는 의식으로 세 번에 걸쳐 따라버리면, 술잔에는 4분의 1이 남는다. 어른은 남은 이 술을 ‘닭이 물을 마시듯이 조금씩 마셔야 한다’고 가르쳤다. 술은 어른께 배워야 한다는 말도 성년례에서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근현대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와 같은 여러 수난을 겪었고, 종전 이후에는 황폐해진 나라를 일으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으로 하여금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게 했고, 학교의 교육은 예(禮)와 인성보다는 명문대 입학에 더욱 전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0대 무역 대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쉼없이 달려온 과정 속에서 우리 고유의 술 문화는 사라지고 왜곡된 일본의 첨주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 문화는 공경의 의미로 술을 계속 따르며 상대의 잔을 채워주지만, 이면에는 술로 경쟁하며 상대방을 억지로 마시게 해 쓰러뜨리게 하는 사무라이의 문화이다.

요즘 대학가와 선진 기업 내에서는 회식 문화가 개선되어 억지로 술을 마시거나 권하지 않는 추세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 국정 질의 과정에서 일부 검찰 공무원들이 특수활동비로 청사에서 술판을 벌이고 폭탄주를 마셨으며 그중 누군가는 청사 민원대기실 바닥에 대변까지 본 추태가 공개됐다.

소위 엘리트 집단이며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예와 정도를 갖춘 조상들의 술 문화는 어디로 간 것인가?

과거 고려와 조선의 사헌부에는 ‘다시제도(茶時制度)’가 있었다. 사헌부는 오늘날 국가권익위원회, 인사혁신처,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의 기능을 수행한 부처이다. 그리고 다시제도는 공무에 임하기 전 차를 마시게 하는 공식적인 티타임 제도였다. 임금 역시 중형을 내리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에 임하기 전, 다방에서 올리는 차를 마시고 신하에게 내려 예로써 마시게 했다. 차를 마시는 이 제도를 실행한 것은 공직자 자신이 먼저 예의를 갖추고 맑은 정신으로 성찰하여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도였다.

차는 마실수록 정신을 깨어 있게 하지만, 술은 마실수록 허점과 추태가 드러나게 한다. 건전한 음주 습관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문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금이라도 공공기관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상기해 보아야 하며, 악습은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조상들의 지혜와 풍류를 따르는 올바른 음주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면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품격 있는 시민 문화로 정착되어 갈 것이다.

김민선 차문화연구소장

김민선 차문화연구소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