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한국이 탄생하는 산업의 땅
도시 문헌학자의 도시 답사기
한국 문명의 최전선(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624쪽 / 2만 7000원)
경기 서남부와 충남 서부에 걸친 서해안 지역은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산업 형태와 교통망이 바뀐 대표적인 곳이다. 염전으로 쓰이던 해안은 농토로 변하고 또 공업 지대로 변하면서 땅의 쓰임도 크게 바뀌었다. 이렇게 교통이 변하고 땅의 쓰임이 바뀌어 온 이 지역의 변화는 지난 백 년간 한국 사회가 겪어 온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책은 도시문헌학과 도시 답사가가 땅에 새겨진 한국 근대사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는다. 대서울권 서해안 지역에서 충남 서해안 지역을 지나 금강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다.
도로와 철도 연결이 미비해 서울·인천 등으로의 왕래가 불편하던 과거 충남 서부 주민들은 인근 항·포구에서 뱃길로 인천을 오갔다. 그러나 그곳 해안가에서 간척 사업이 일어나며 항·포구가 사라지고 한편으로 장항선 철도 등 육로가 정비되면서, 지역에 따라 인천·서울과의 연결성이 개선되거나 오히려 악화된 경우가 발생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서해안고속도로가 놓이고 최근 서해선 철도까지 개통을 눈앞에 두면서, 이 지역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 과정들 속에서 경기 서남부 및 충남 서해안 지역은 한국의 새로운 산업 거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산업 거점화하는 동시에 맞게 된 또 다른 시대적 변화가 있다. 바로 신냉전 시대 도래에 따라 이 지역이 한국의 새로운 '최전선'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산권 붕괴 및 개혁 개방 국면 이후 한국과 경제·외교적으로 비교적 가까워졌던 중국은, 최근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다시 자유주의 진영과 대결 구도를 꾸리고 있다. 이에 따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게 된 한국 서해안 지역이 실질적인 최전선이 되고 있다. 지난 시기에 충남 당진·서산 등의 해안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 시설이 대규모로 형성되어 왔는데, 새로 생겨난 외교·안보상의 변수는 향후 충남 서해안권이 맞이할 또 다른 변화상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선 대규모 매립으로 해안선이 변한 인천의 간석지 및 강화 등 인근 도서, 물길이 변하고 뱃길이 사라지며 변모한 고양과 김포 일대 등을 살핀다. 그리고 염전에서 공단이나 주거지로 변한 인천, 시흥, 안산 등의 해안 지역을 확인한 뒤, '미래 한국'이 탄생하고 있는 경기 서남부 화성과 평택 서부로 발걸음을 이어 간다.
화성에서 평택을 지나 충남 아산·당진·예산까지 간척지로 이어진 이곳은 근현대에 방조제가 지어지며 형성된 거대한 평야 지대이다. 기존 주민은 물론 새로 유입된 피란민·빈민·수몰민 등이 농지로 일구어 낸 이 지역 곳곳은 1970년대 이후 산업 단지가 하나둘 들어선 이래, 현재는 한국의 주요·첨단 산업 시설이 자리하며 미래 한국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천안이 이루는 삼각 지대는 고속철도 건설과 반도체 벨트 형성으로 빠르게 도시화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6·25 전쟁 이후부터 새마을 운동 시기에 걸쳐 기존 주민과 피란민 등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간척지, 농토, 농촌 마을 등이 곳곳에 자리한다. 1976년 충남도청에서 발행한 새마을의 '승자상'이나 과거 정부가 발행한 각종 새마을 운동 관련 문헌에서 주목한 이 마을들은, 충남 서부의 오늘을 있게 한 땅과 삶의 변화 흔적을 간직한 '도시 화석'으로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한국의 주요 산업 지대로 변모한 이 지역에서 목격한 발전의 그늘도 아울러 전한다.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과 부당한 처우에 신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살피고, 산업 시설과 발전소 운영으로 생겨난 환경 문제와 그 이면에 도사린 고용 문제도 확인한다. 이어 행정 구역 승격과 인구 증가라는 목표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자치 단체의 무리한 행정 등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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