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탐구] 소상공인의 몰락은 민주주의의 위기
정부대책은 미봉책 그쳐
‘민주주의의 꽃’ 고사위기
1000조원 넘는 대출금을 소상공인이 상환하고 원상회복하려면 소비가 촉진되어 영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하지만 내수침체와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소상공인의 경영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4분기에 대출이자를 연체한 자영업자 비율은 4.2%로, 2013년 1·4분기(4.37%)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중채무에 저신용인 취약차주의 비중도 12.7%로 증가했고, 이들의 연체율은 10.2%로 치솟았다.
자영업자 연체액 합계는 10조8000억원으로 200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이다. 소상공인의 대출부실을 지역 신용보증재단이 대신 갚아주는 '대위변제액'은 올해 들어 5월까지 총 1조29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4.1% 증가했다.
영업부진과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해 폐업을 선택하는 사업자도 늘어났다. 작년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9.5%이고, 폐업자 수는 91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어났다. 앞으로 내수경기가 개선되고 고금리가 해소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채무부담 폭탄이 터지면 자영업자 폐업대란이 발생할 것이 예고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지난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금융부담 완화에서 재기지원까지 포괄하는 25조원 규모의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세부적으로 대출 상환기간 연장 등의 금융지원(14조원), 부실차주 채무탕감을 위한 새출발기금 확대(10조원), 점포철거비·전기료 감면 등 재정·세제 지원(1조원)의 내용이 담겼다. 대부분 단순한 '현금성 지원'의 미봉책에 그칠 뿐 구조적이며 항구적인 대책은 빠져 있다.
소상공인의 몰락을 방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빈약하다. 소상공인은 경제의 근간으로 우리나라 사업체의 95%, 일자리의 46%를 차지한다. 비중이나 숫자 면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질적으로도 경제의 건전성과 활력을 상징한다. 소상공인은 기업 형태로 가장 작은 단위인 미소기업(micro-enterprise)을 구성한다. 소상공인이 성장하여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발전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도 초기에는 모두 소상공인으로 시작했다.
고용 형태로 소상공인은 스스로 고용된 사업가(self-employeed business)라는 의미의 자영업자로 불린다. 자영업자는 자본가인 동시에 노동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자가 스스로 창업해 주인이 되면 자영업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임금만을 취하지만 자영업자는 임금에 자본수익까지 얻는다. 열심히 일해 많은 소득을 올리면 그게 모두 자기 수입이 되고 잉여 자본을 축적해 재투자하여 기업으로 키운다. 소상공인의 성장사다리가 작동해야 경제의 선순환 생태계가 건강하고 건전해진다.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국적·나이·학력에 상관없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이며, 바로 소상공인의 잠재력을 의미한다. 중세의 부르주아는 자영업자를 지칭하며 자영업자가 성장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민주주의가 발달했다. 이런 점에서 소상공인이 튼튼해야 중산층이 두터워져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
정부는 소상공인 지원을 단순히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혜성 지원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우리 소상공인이 어려운 것은 환경적 변화보다 경제구조 양극화에 더 크게 기인한다. 소상공인의 몰락이 중산층 붕괴로 이어져 민주주의가 위협받지 않도록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회생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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