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채 상병 특검 또 거부한 윤 대통령, 민심과 싸우잔 건가
윤석열 대통령이 9일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21대 국회 때인 지난 5월21일에 이어 재차 거부한 것이다. 이번에도 특검법을 찬성하는 압도적 다수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을 향한 의혹을 덮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사유화했다. 윤 대통령은 기어이 민심과 싸우기로 작정한 건가.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지난 8일 경찰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혐의가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하와이 현지에서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경찰 수사 결과로 실체적 진실과 책임소재가 밝혀진 상황에서 특검법은 철회돼야 한다”고 했는데,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다. 경찰 수사 결과는 “본질은 박정훈 수사단장의 항명”이라는 대통령실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경찰이 대통령이 연루된 사안을 제대로 수사했겠느냐고 국민들은 의심한다. 특검 도입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거부권을 행사할 때보다 개입 의혹은 짙어졌다. 지난해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기록이 이첩되던 날 윤 대통령이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신범철 차관,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 전 차관은 국회에서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 “회수에 관한 것”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으로 김건희 여사 계좌를 관리한 이모씨와 임 전 사단장이 친분이 있다는 정황도 나왔다. 사안이 ‘임성근 구하기’의 배후에 김 여사가 있다는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의혹은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 등 최고 권력기관이 광범위하게 연루돼 있어 공수처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국민 눈높이에서 의혹을 낱낱이 밝히려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특검이 수사할 수밖에 없다.
국회 재표결에서 여당 의원 108명 중 8명 이상 찬성해야 특검법이 실행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채 상병 순직 1주기인 오는 19일 이전 재표결을 밀어붙일 게 아니라, 특검법이 통과되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검 추천과 관련해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대법원장 등의 추천을, 개혁신당은 대한변협의 추천을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은 특검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제3자 특검 추천을 수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채 상병 순직의 진실과 외압의 실체를 밝히라는 것이 국민의 단호한 명령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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