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내부고발자' 강준만을 말하다

김고은 기자 2024. 7. 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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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언론] 강준만의 투쟁 / 윤춘호 SBS 논설위원

21대 총선이 코앞이던 2020년 4월. 조선일보에 실린 한 서평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말판도 아닌데 서평 기사가 1면에 이어 2면 톱 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다는 점에서 한 번, 그 책의 저자가 강준만이란 점에서 또 한 번 놀라웠다. 당시 책을 펴낸 출판사(인물과 사상사) 편집장은 “조선일보가 강준만 교수님의 책을 1면에 실어준 것은 아마 ‘조선일보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때를 전후해 강 교수의 신간 소식은 조선일보 지면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문재인 정권과 진보진영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이 정치면이나 사회면 기사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김종구 전 한겨레 편집인은 “한때 ‘안티조선운동’의 투사였던 그가 세월의 풍화와 함께 이제는 ‘조선일보의 사랑을 받는 지식인’이 됐다”며 혀를 찼다.

진보 논객의 대부, 킹메이커, 독설가, 그리고 소통 전도사. 강준만을 수식하는 여러 말이 있다. 그중 어떤 것이 강준만의 ‘진짜’ 모습에 가까울까. 지난 2014년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가 그를 인터뷰한 한겨레 기사에는 그의 학교 연구실과 저술공간을 비롯해 그의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종일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강재훈 당시 한겨레 사진기자는 그날 익산역 플랫폼까지 배웅 나와 일행에게 커피를 건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그의 본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단다. 이 사진은 책 153쪽에도 실려 있다. /강재훈 사진가

강준만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대접이 이처럼 달라진 건 무엇 때문일까. ‘진보 논객의 대부’였던 그가 ‘배신자’ ‘변절자’도 모자라 ‘(윤석열 정권의) 어용 지식인’ 소리를 듣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준만의 변화 역정을 더듬어 가면 ‘달라진 한국의 진보’를 읽어낼 수 있다. 언론인이자 작가 윤춘호가 책 <강준만의 투쟁>을 쓴 첫 번째 목적이기도 하다. 그는 강준만이 진보가 아니라면 “그것은 강준만의 변화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진보의 좌표가 변하고 진보의 영역이 줄어들었기 때문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 이후 20여년은 진보의 퇴행, 무능, 위선이 드러난 ‘진보 반동의 시대’다. 그런 진보를 향해 내내 쇳소리를 내온 사람이 강준만이다. “지금 받고 있는 홀대와 푸대접은 강준만이 ‘내부고발자’라는 증거”다.

강준만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진보와 “진보를 공격하는 일회용 소재로 이용”할 뿐인 보수. 어느 쪽도 온당하지 않다. 저자는 “한 지식인의 30년이 훨씬 넘는 노정에 대해서 한 사회가 마땅히 표해야 될 예우가 있다”며 “변명이든, 비판이든, 예찬이든 강준만의 삶은 기록되고 정리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썼다.

그의 ‘강준만론’은 ‘진보 반동의 시대’와 겹치고 병행했던 2005년 이후 ‘후기 강준만’에 대체로 집중돼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킹메이커’로 명성이 자자했던 강준만은 2004년 ‘친노’ 세력과 결별하고 진보진영에서 “스스로를 퇴출”한 데 이어 2011년 미국 유학 후엔 당파성을 버리고 중도로 자리를 옮기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그를 “여전히 진보의 영지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진보는 몽둥이로 조지고 보수는 회초리로 때리는” 그에게 섭섭함을 넘어 증오를 토해내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난 보수 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보수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강준만이다.

실명 비판과 독설로 글이란 칼을 ‘휘둘렀던’ 이 “난폭한 지식인 검투사”는 후기 들어 소통 전도사를 자처했다. 하지만 대중과는 일관되게 ‘불화’했다. “어느 순간에도 대중에게 영합하거나 아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중을 훈계하고 꾸짖는 쪽에 가까웠다. 대중도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정치인이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한다. 그런 그의 ‘키즈’를 자처하며 열광했던 지지자들은 거의 등을 돌렸고, 그는 “신도들이 떠난 개척교회 목사” 같이,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고립은 “자발적”이고 “명예로운” 것이었다. 저자는 “봉쇄수도원에 스스로를 가둔 수도사” 같다고 썼다. “학연, 지연, 혈연과 철저하게 담을 쌓고” “어디 자리 없나 기웃거리지 않”으며 살아왔다. 3년 전 전북대에서 정년 퇴임할 때 제안받은 석좌교수 자리마저 거부했다. “연대가 아닌 고립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것은 야심이 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평했다. “글로 세상을 흔들고 사람들을 일깨우겠다는 그 야심, 그 야심이 참으로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읽고 쓴다. ‘강준만의 책이 강준만의 책을 밀어낸다’ 싶을 정도로 책을 쓰고 또 쓴다. 여기에 연재 중인 신문 등 칼럼도 여럿이다. 저자는 “매달리고 노력하면 세상은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그런 믿음이 없다면 40년의 고독을 견디며 그렇게 끈질긴 작업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 밑바닥에는 ‘진보 전문가’로서 감당해야 할 ‘무한대의 책임’이 자리한다.

그동안 쓴 책이 300권에 육박하고, 논문도 500편이 넘는다. 저자가 “작업을 하는 내내 강준만이라는 태산 언저리에서 헤매는 느낌이었다”고 한 심경을 알 만도 하다. 30년 넘는 방송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 퇴임을 앞두고 굳이 이 고된 작업을 자처하고 나선 저자의 사명감 또한 강준만의 그것 못지않게 느껴진다. 덕분에 독자는 섣불리 따라가기 힘들었던 강준만의 저작 활동을 압축적으로 소화할 수 있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 등을 통해 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도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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