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누구를 위하여 대표는 선출되는가
지난달 초 제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국회에서의 형식적 선출 이전에 민주당 내에서 의장 후보자 선출을 위한 투표가 있었는데, 여기서 추미애 후보를 꺾고 우 후보가 선출된 결과에 대해 많은 언론이 이변으로 보도를 했다. 추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여론에서는 추 후보가 우세였지만, 의장 후보 선출권을 갖고 있던 민주당 의원 과반수 이상은 우 후보를 선택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 성향의 방송 매체는 우 후보를 지지한 민주당 의원들이 민심을 배반했다고 연일 성토를 이어갔다. 심지어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주당 성향의 유명 지식인이 방송에서 “이번 민주당 의원들의 행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총리를 선출하는 내각제의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확신에 찬 선언을 할 정도였다.
과연 우 후보를 지지한 민주당 의원들이 정말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국회의원들은 무조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나 여론의 뜻에 따라서만 투표를 해야 할까?
내각제 개헌의 싹조차 짓밟았다고 말한, 작가라 불리는 그 지식인은 미국의 대통령선거인단을 유권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좋은 대표로 묘사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선거인단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다. 대통령선거인단으로 선출된 자가 유권자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왜 번거롭게 선거인단을 선출해 그들로 하여금 다시 투표하게 하는 간선제를 하고 있는가?
미국의 대통령선거인단은 승자독식(winner-take-all)을 위해 만든 제도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선거인단 수는 55명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민주당이 51%를 획득하고 공화당이 49%를 획득했다 가정해보자. 그러면 선거인단 수 총 55명 중 민주당이 28명, 공화당이 27명을 가져가는가? 아니다. 민주당이 55명을 모두 가져간다. 이것이 승자독식이다. 이래서 대선에서 마국 전체 유권자로부터는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가 낙선하고, 선거인단 수를 많이 확보한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발생시킨다. 민의의 왜곡이라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내각책임제를 하는 다수의 유럽국가가 의아해하거나 조롱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런 제도를 지속하고 있는가? 그 답은 미국 헌법에 있다. 미국 헌법에는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고, 공화주의에 해당하는 단어만 있다. 적절한 견제와 제약이 없으면 대통령이 언제든 절대권력의 왕이 될 수 있는 대통령제에서는 민주주의보다 공화주의의 요청이 더 클 수 있다.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이자 건국 당시 정치제도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제임스 매디슨은 공화주의와 결합한 대의제가 민주주의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의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순수한 형태인 직접민주주의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리스 도시국가와 같은 소규모 정치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현재 국가와 같은 대규모 정치공동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의제를 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매디슨은 선출된 대표가 통치하는 대의제와 그 대표들에게 위임된 권력을 분할해서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공화제가 직접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본 것이다. 매디슨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목소리 큰 파벌의 선동에 의해 휘둘릴 수 있지만, 공화주의적 대의제는 국민에 의해 선택된 대표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공익에 근접해가는 현명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 공화주의적 대의제가 갖는 이러한 효과를 매디슨은 ‘정제(refinement)’라 불렀다.
이 ‘정제’의 효과는 선출된 대표들의 행동에 달려있다. 매디슨에 의하면 대표로 선출되어야 하는 사람은 ‘사회의 공동선을 분별할 수 있는 최상의 지혜와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매디슨은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자 한 명이 대표로 선출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에서는 선출된 대표가 특정지역의 ‘특수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넓은 지역구에서 여러 명이 대표로 선출되는 중·대선거구에서는 공동체의 ‘일반이익’을 수행할 수 있는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대표를 선출하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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