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어린이 마음으로 산다면
장마철답게 이름값을 한다. 늦은 오후, 꽃다래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소낙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다리 쉼 삼아 옆 정자로 뛰어들었다. 그 안에는 이미 대여섯 살과 서너 살로 보이는 자매,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서른 중반의 여자가 있었다. 비가 쏟아지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까 내기라도 하듯, 정자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크록스 신발(발등에 구멍 뚫린 신발)을 신은 발을 내밀며 깔깔댔다.
‘비 맞고 싶은 게지.’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둘은 빗줄기 속으로 뛰쳐나갔다. “우산 쓰고 가”라는 엄마의 말은 뒷전에 두고. 빗속에서 까불거리는 춤을 췄다가, 나무 밑으로 피했다가, 다시 빗속에 뛰어들어 신발에 든 빗물로 상대방에게 흩뿌리는 장난을 쳤다. 소나기가 그들에겐 신나는 놀잇감이었다.
아이들 마음은 똑같지. 나 역시 그랬으니.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방죽으로 둘러싸인 들판마을이라, 장마나 태풍으로 비가 좀 왔다 싶으면 길이 잠길 정도로 물이 들었다. 그러면 붕어나 미꾸라지들이 길가의 풀숲에 숨어있기 마련. 내 또래 아이들은 이때 소쿠리 들고 풀숲을 헤치고 다니며 깔깔거렸다. 물에 첨벙대니까 시원하지, 고기잡이로 재밌지.
여섯 살 때였던가. 한 번은 동네 형들과 장마 끝 무렵 엄청난 비가 오는 중에, 그날도 어김없이 물 첨벙대며 길가 풀숲을 훑고 다녔다. 들판에 물이 차면 배수장에서 물을 퍼 올리기 때문에, 둑 안쪽의 물살은 상당히 빠르다. 어릴 때야 그런 사정은 모르고 고기잡이와 물놀이에 더 바빴을 건 뻔한 일. 당시 가장 나이 많았던, 그래 봐야 열한 살밖에 안 됐던 동네 형이 웅덩이에 쑥, 빨려 들어가는 장면도 직접 봤다.
어디 비와 물만 놀잇감이랴.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 어릴 적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기록해 놓았다. 그중에 한 장면. 그의 숙모 집에 불이 나서 훨훨 타고 있었다. 어린아이 눈에 얼마나 장관이었겠는가. 이 멋진(?) 불놀이가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 불난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춤추고 있다가 제 아버지한테 멱살 잡혀 내동댕이쳐졌다는 얘기인즉.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당시 마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옆집 형이 겨울 방학이라 집에 다니러 왔던 날. 그의 집 창고에 덫으로 놓았던 사각형 쥐틀에 쥐 한 마리가 산 채로 잡혀있었다. 저걸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던 그 형이, 호롱불에 사용하던 등유를 조금 묻혀 쥐에다 발랐다. 그러곤 마을 앞 빈 논으로 나가 성냥으로 불을 켰는데, 이 쥐가 로켓 속도로 논에 세워놓았던 짚동에 숨어들어 불이 붙었다.
우와! 불이 난 걸 보고 나는 손뼉 치며 불꽃이 제대로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 형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바람을 받은 불꽃이 훨훨 타올랐다. 그때야 불이 났다는 걸 본 동네 어른들이 뛰어오며 야단쳤다. 불 끄지 않고 뭣 하느냐고. 사실이지 어른 마음이었다면 빨리 불을 꺼야 옳았다. 짚은 땔감으로, 소여물로도 썼지만, 상등품은 가마니 짜는 재료였으므로 재산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눈으로 볼 때야 더 없는 불놀이였으니 좋아라, 했겠지만.
미국 정신의학회가 계절성 동반을 병적 특징으로 분류한 증상 중에 ‘계절성 우울증’이 있다. 계절성 정동장애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계절성이 특징이므로 가을 겨울은 물론 봄 여름에도 나타난다. ‘여름 우울증’은 주로 무더위 탓으로 불면이나 짜증, 식욕감소 등과 같은 우울 증상이 심해지는 걸 말한다.
아이들은 겨울엔 추운 줄 모르고, 여름엔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논다. 장대비 속을 내달리는가 하면, 뙤약볕에서도 공차기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겐 계절성 우울증이 생길 틈이 없다. 열린 마음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상황을 놀이로 삼기 때문이다. 어린이 마음으로 사는 게 여름 우울증 대처에 특효라면, 나도 크록스 신발 신고 빗속에서 한번 놀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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