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수많은 날 본다는 것 [1인칭 책읽기: 기분의 탄생] 

이민우 기자 2024. 7. 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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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하린 시인 「기분의 탄생」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
이제야 꺼내는 자신의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에 사람들은 시인이 되길 원한다.[사진=더스쿠프 Lab. 리터러시]

지난 6월 28일 하린 시인의 출간기념 북 콘서트가 있었다. 하린 시인의 4번째 시집 「기분의 탄생」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사회를 봤다. 하린 시인의 이번 시집은 화자의 수많은 목소리로 이뤄져 있다. 청소년, 이방인, 노동자, 연습생, 알바생, 가장, 세입자, 그리고 고故 이선균 배우까지 한명 한명의 육성을 가져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이 있다. 하린 시인도 그렇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교수인 동시에 계간 「열린시학」의 부주간, 그리고 더스쿠프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대학에서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시클」 같은 책을 발간해 시를 교육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친구다.

북 콘서트는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의 한 강의실에서 열렸다. 행사 시간이 되자 50명이 넘는 사람들로 강의실이 가득 찼다. 하린 시인에게 시를 배운 95세의 시인을 비롯해 많은 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시인에게 시집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시인은 시로 말한다.

시집 속 인물만큼이나 출간 기념회에 모인 다양한 사람은 하린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사실 시적 화자라는 건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 속에서 기존의 자신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바라볼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시는 비로소 살아난다.

시적 화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날 때 진정 시 속에서 살아난다.[사진=펙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자신이 있고 나 자신에게도 수많은 내가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날 행사에 찾아온 많은 이는 하린 시인에게 글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질의 응답 시간에 이들은 표절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남과 다른 시를 쓰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질문을 꺼내놨다. 그들의 나이는 제법 많았다.

문학교실에 가면 나이가 있는 시인 지망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젊은 지망생도 있지만 시인이 되려는 중년과 노년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인이라는 것이 칭송받던 1980년대의 흔적일지도 모르지만 이날 하린 시인의 북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꿈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거보다는 지금, 현재에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이들이었다.

나이를 먹고 삶을 살다보면 하고 싶은 말과 갖고 싶은 목소리가 생긴다고 한다. 이곳을 찾아온 이들은 과거보단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들에 가까웠다. 그들은 하린 시인의 출간 기념회를 보며 자신의 문학을 꿈꿨다.

하린 시인의 네번째 시집의 화자들은 사회의 소수자들이었다. 하린 시인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시 속 수많은 화자는 모두 지금을 말한다. 문학이 무엇이냐 물으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시인의일요일 제공]

하지만 이날 행사는 지금을 사는 이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하나로 정의하지 못해 그 수많은 자신을 목도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오랜 삶을 관통해 그곳에 있던 수많은 나를 바라보는 것.

이날 하린 시인은 세상의 깊숙한 아픔을 바라보는 이었다. 문학이 무엇이냐 묻는 시대에 자신을 리얼리즘 시인이라 말하는 하린 시인의 모습에서 또 수많은 '나' 중 하나를 바라본 시간이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인원이 많아 뒤풀이에는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나 역시 뒤풀이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모두가 "충분히 모든 것을 말했다"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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