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2> 민물장어와 우나기
- 풍부한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
- 스태미나 음식 대명사로 급부상
- 전통 복달임 삼계탕·개장국 추월
- 日도 여름철 다양한 덮밥류 즐겨
- 그 시작은 1700년대 에도 시대
몇 년 전, 고창 갯벌 앞에서 장어를 구워 먹은 적이 있다. 전북 고창군 하전마을. 서해로 열린 넓디넓은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 이곳에서 삼복을 앞두고 장어를 구웠다. 땀 뻘뻘 흘리며 숯불에 장어 기름 뚝뚝 떨어뜨리며 지글지글 바야흐로 익어가던 장어. 머리 위로는 염천 뙤약볕이 내리쬐고 갯벌에서는 지열이 이글거리는데, 그 와중에 소금에 찍어 먹었던 장어 한 점 고소함은 모든 걸 보상해 주었다.
지난겨울에는 가족과 부산 가덕도 세바지 방조제에서 장어를 구웠다. 칼바람 속 주변 마른 갈대를 모아서 어렵사리 숯불을 피우고는, 두툼한 장어 두어 마리 석쇠에 올려 구웠다. 장어 기름으로 치솟은 불길은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도 꺼지지 않고 장어를 오돌오돌 제대로 구워냈다. 기름이 잘잘 오른 장어 한 점 먹으니 금방 온몸이 따듯하고 든든해졌다.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잘 보내게 생겼다며, 한겨울 바닷가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도란도란 장어 회식을 한 셈이다.
며칠 전에는 서낙동강에 접한 김해 불암동 장어타운에서 장어 음식 촬영이 있었다. 여름 보양식 관련 프로그램인데, 요즘 여름나기의 대표 음식으로 장어 음식을 찍은 것이다. 이렇듯 장어는 많은 이에게 다양한 조리 방법으로, 다양한 음식으로 즐겨 먹는 여름 절기 보양식으로 정착한 듯하다.
▮국내선 ‘풍천장어’ 명성이 최고
앞에 언급한 고창 갯벌과 가덕도 동선 세바지, 김해 불암동 장어는 모두 ‘민물장어’이다. 뱀처럼 생긴 장어라고 학명으로 ‘뱀장어’. 한자로 사장어(蛇長魚), 여러 문헌에는 만리(鰻鱺). 만리어(鰻鱺魚)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뱀장어는 다른 붕장어, 갯장어에 비해 몸이 길고 날렵하다. 몸 색깔은 청회색이고 배는 흰색 또는 노란색을 띤다. 몸길이는 보통 60㎝ 안팎. 큰놈은 1m를 넘기는 것도 있다. 흔히들 몸이 길다고 장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바닷장어류 또한 장어라 불리는 추세라 바닷장어와 구분키 위해 민물장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요리해 먹는 장어는 크게 네 종류가 있다. 뱀장어와 붕장어, 갯장어와 먹장어다. 이 모두가 강장·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영양성분도 불포화지방산부터 양질의 단백질까지 풍부하게 함유한 음식 재료이다.
그뿐만 아니라 숨통을 끊어도 끊임없이 꿈틀대는 끈질긴 생명력에 사람들은 경외심마저 가지기도 한다. 이 강인한 생명력을 취하기 위해 인간은 이들을 먹음으로써 자신 또한 건강한 삶을 꿈꾸는 것이다.
특히 민물장어는 스태미나 음식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산란철이 되면 자신이 평생을 보낸 하천을 떠나서, 3000여 ㎞ 떨어진 수심 깊은 바다로 들어가 산란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지닌 어종이다.
우리나라 장어 가운데 그 명성이 가장 높은 것을 꼽으라면 ‘풍천장어’가 있겠다. 예부터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지점을 ‘풍천(風川)’이라 했는데, 선운사에서 곰소만으로 흘러드는 인천강은 밀물이 되면 큰바람이 서해 거센 물결을 몰고 강을 따라 올라오는 대표적인 풍천이다.
인천강 하구, 바닷물과 민물이 합류하는 곳에서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 일컫는다. 여느 장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육질이 탄탄하고 쫀득하면서, 감칠맛이 진하다. 또한 적당히 고소한 기름기 속에 담박함이 고급스러웠다.
한때 김해 서낙동강 장어도 맛이 좋기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김해 서낙동강은 현재 김해의 중심 강이면서 한때는 낙동강의 본류였던 곳이다. 이 때문에 서낙동강 하구 지역은 풍요로운 황금어장이 형성됐고, 그물만 던지면 다양한 어족으로 만선을 이뤘던 곳이다. 그중 장어의 어획량도 많았기에 당시 김해 선암다리 양옆 천변으로는 30여 곳의 장어구이 집이 자리 잡을 정도로 지역의 명물이기도 했다.이제는 고창이나 김해나 실뱀장어를 채포(採捕)해 양식한 장어로 조리하기에 자연산 장어의 맛은 더 이상 보기가 어려워졌다.
▮복달임 음식 대명사 된 민물장어
어쨌거나 삼복 즈음해서 장어류 소비가 늘고 있다. 부산 기장에는 붕장어·말미잘을 함께 넣고 끓여내는 바다의 십전대보탕으로 불리는 ‘장어 말미잘탕’, 전남 여수 지역에서 ‘갯장어 샤부샤부’, 부산·경남 해안의 ‘꼼장어구이’와 ‘꼼장어수육’ 등이 대표적이다.
장어류 중에서도 복달임으로는 민물장어가 최고 위치에 있다. 민물장어구이가 그 대표 격인데, 굽는 방법이나 장어 살에 바르는 양념장에 따라 ‘소금 장어구이’ ‘간장 장어구이’ ‘양념 장어구이’ 등으로 나뉘며, 그 맛의 다채로움 또한 천차만별이다. 기력이 떨어진 집안 어른들께는 몸 전체가 노란빛을 띠는 자연산 큰 장어를 참기름 두른 가마솥에 산 채 넣고, 볶듯이 열을 가하다가 곰국으로 만들어 보양식으로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장어가 우리의 복달임 음식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원래 우리 전통 복달임 음식은 개장국 삼계탕 등이 대표적이었다. 물론 귀족은 임금이 하사한 소고기나 얼음 등으로 여름을 나기도 했지만, 백성 대부분은 집에서 기르던 개나 닭으로 복달임을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 장어 음식의 역사는 꽤 길다. 1700년대 후반 에도 시대 때부터 먹어왔다고 전한다. 일본도 장어를 여름 절기 음식으로 즐기고 있는데, 거의 압도적으로 ‘우나기(うなき. 민물장어)’를 복달임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에는 ‘도요노 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 땅의 기운이 왕성한 절기. 일 년에 4번 돌아옴)’라는 절기가 있는데, 그중 여름 절기(입추 18일 전)가 우리의 삼복에 해당한다. 이즈음 일본인은 복달임 음식으로 민물장어를 널리 먹는다. 해마다 세계에서 유통되는 민물장어의 70% 이상을 일본인이 소비한다는 통계만 보아도 쉬 알 수가 있겠다.
주로 민물장어를 구워서 밥 위에 올려서 먹는 ‘장어덮밥’이 대표적인 음식으로, 조리법은 민물장어를 칼로 넓게 펼친 뒤 꼬치에 꿰어 양념을 바르고 숯불에 구워낸다. 구워낸 장어를 밥 위에 올려 덮밥으로 먹는다.
일본의 장어덮밥은 크게 나누어 돈부리바치(どんぶり鉢)라는 사발에 장어를 담아내는 우나기동(うなぎ丼)과 사각형 칠기 찬합에 올려내는 우나쥬(うな重), 오히츠(お櫃)라는 나무 밥통에 담아서 내는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가 있다.
요즘은 서민풍으로 붕장어나 갯장어로 장어덮밥을 해 먹기도 하는 추세이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은 시기와 역사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복달임으로 ‘장어’와 ‘우나기’ 음식을 즐겨 먹어 왔다. 먹는 방식과 조리법은 다르되 같은 식재료로 비슷한 절기에 복달임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두 나라 사이에 식재료나 조리법 등 음식문화의 빈번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로의 음식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고 들여다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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