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정수, 다정함으로 마을 안팎 누빈 ‘일당백’ 활동가
“우리가 사랑했고, 우리를 사랑했던 장이정수(1967~2024)”.
57년의 삶을 닫고 지난 2일 떠난 그의 장례식장은 깊은 슬픔 가운데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전국에서 달려온 친구와 동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꼈고, 너나없이 밤늦도록 울다 웃다 하며 ‘장이샘’ 이야기를 이어갔다. 암 투병 중이었지만 큰 내색 없이 활동을 이어갔으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의 부고는 너무도 돌연한 일이었다. 어디 아팠었냐고 묻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조문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가득했던 나흘간 애도의 풍경은 떠나간 사람을 향한 애통함과 사랑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추모식장이 터져나갈 듯, 많은 사람이 참석한 추모식은 그와의 수많은 일화로 이어졌고 유튜브로 동시 방영되었다.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살아 숨 쉬어요’라는 댓글처럼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맥박처럼 남을 그였다. 여섯 명이 들려준 추모사 속의 그는 더없이 뜨겁게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마을과 활동가를 사랑한 사람, 따뜻하고 너른 비빌 언덕, 지혜롭고 기개 있는 사람, 어느 하나 건성인 것 없이 모든 것에 진심인 사람, 스스로 빛나기보다 다른 이들에게 빛을 심어준 사람이었다. 송곳 질문과 활달한 유머로 어느 자리건 유쾌한 반전을 만들었던 그를 떠나 보내며 우리는 그를 더 알게 되었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는 일찍 결혼해 대가족 큰며느리이자 주부로 꼬박 10년을 살았다. 서른 중반인 2001년에 여성환경연대 상근활동가로 일하다가 몇 년 후 그는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삶을 바꾸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는 사회 말고 아래로부터, 나부터 바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찾은 답은 ‘마을’이었다.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 아래로부터 그리고 나부터 마을에서 변화를 만드는 활동을 절감하며 결혼하고 내내 살아온 중랑구에 ‘초록상상’을 만들었다. 2004년 서른여덟의 그는 마을활동가가 되었다. 지금과 달리 지역운동이 담론적 주장을 크게 넘지 못했던 당시 환경시민운동을 돌아보면 마을에서 여성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은 대담한 선택이었다. 법제도와 정치 개혁이 시민운동의 주요 과제였고, 현안 투쟁을 위한 기자회견과 집회가 중요했던 그 시절 마을에서 변화를 만들자며 나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가족 큰며느리로 꼬박 10년 살다
2001년에 여성환경연대 상근 활동
3년 뒤 “마을에서 변화 일으키겠다”
동네로 돌아와 여성환경운동 헌신
타고난 다정함과 사랑으로 신뢰 쌓아
당신이 있어 늘 든든하고 따뜻했어요
‘여성주의가 사회적 약자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키워주었다면, 생태주의는 내가 자연의 일부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했던 그에게 생태여성주의(에코페미니즘)적 돌봄과 성평등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은 자연스럽고도 가슴 뛰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마을은 이슈와 세대, 전문영역으로 분화되어가는 시민운동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을운동은 그렇게 분리되지 않으며 마을 의제는 사회 전체와 깊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돌봄의 공동체적 연대는 일상의 삶의 장소인 마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어디서든 운동의 최우선은 사람들과 신뢰의 ‘관계망’을 쌓는 것이라던 그의 통찰은 마을에서 주부로 살림하며 이웃과 부대끼며 관계를 맺고 살았던 경험에서 체득된 것일 게다. 그가 쌓아간 관계망의 뿌리는 ‘다정함과 사랑’이었다. 그건 그의 삶과 태도에 밴 문화적 혈액형이자 타고난 성품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늘 먼저 묻는 사람, 후배활동가의 실연 얘기를 듣고는 광화문 거리에서 ‘비와 당신’을 노래해 준 사람, 활동가는 어떤 존재인가를 늘 질문하고 고민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에코페미니스트, 풀뿌리 민주주의자이며 마을주의자였던 활동가 장이정수. 그는 활동가란 “사회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내가 판단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운동하는 사람이며, 운동과 자기 삶을 일치시켜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운동과 삶을 일치시켜가려고 그토록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준 것일까. 마을활동가로 돌아온 이후 그의 활동은 경계 없이 점점 넓어지고 활달해졌다.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 중랑희망연대위원장, 농부시장 마르쉐 이사장을 거쳤고, 떠나기 전까지 사단법인 중랑마을넷 상임이사, 한살림재단 이사, 서울풀뿌리시민사회네트워크 공동대표, 사단법인 마을 이사, 서울시마을법인협의회 대표, 그물코협동조합 이사, 중랑구협치회의 공동의장, 박영숙살림이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마을 활동가들은 ‘그녀가 없는 동네가 두렵다’고, ‘장이샘이 하던 일을 나누려면 100명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을 안과 밖의 관계망을 가로지르며 일당백 활동가로 살았던 그를 떠나보내며 누군가 앞으로 수많은 장이정수가 마을을 누빌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마을 곳곳을 다니고 이웃을 만나면서 마을돌봄공동체의 관계망을 더욱 넓게 펼칠 것이다.
모란공원에서 그가 애창했던 노래 ‘언젠가는’을 불러주었다. 뒤돌아보니 우린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그대로. 마을과 활동가를 사랑한 장이정수 잘 가요. 당신처럼 마을을 누비며 다니는 활동가들의 발걸음을 지켜주세요. 뜨겁고 다정했던 당신. 우리가 사랑한 우리를 사랑한 장이정수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 늘 든든하고 따뜻했어요.
윤정숙 |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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