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띠 장마와 물 폭탄
날씨가 확실히 달라졌다. 장마도 올해와 작년이 다르다. 출근길에 지인을 만나면 “밤새 안녕하셨냐”는 인사가 절로 나온다. 올핸 ‘띠 장마’가 등장했다. 지난 8일 기상청 위성사진을 보면 동서로 좁고 길게 형성된 띠구름대가 중부 지역에 걸쳐 있다. 이 지역엔 시간당 10~50㎜의 폭우가 내린다. 구름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이날 경북 상주에 200㎜가 넘는 비가 내리는 동안 달성과 김천 등지는 10㎜ 안팎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작은 땅덩어리의 나라지만 비가 오는 곳과 그러지 않는 곳의 날씨는 극과 극이다. 띠구름대 지역엔 호우특보, 그렇지 않은 곳엔 폭염특보가 내려진다.
충청·경북 일대에 며칠째 물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충북 옥천에서는 산비탈이 무너져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북 안동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침수로 고립됐다가 다행히 소방대에 구조됐다. 띠 장마는 한반도 상공에 존재하는 2개의 고기압 때문이라고 한다. 통상 장마는 한반도 남단의 북태평양고기압에 의해 형성된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를 뿌린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북서쪽에 고기압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이 2개의 고기압에 장마전선이 눌려 좁고 긴 띠 모양이 된 것이다. 장마철 한반도에 고기압이 추가된 원인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장맛비가 유독 밤에 더 많이 내리는 것은 급변하는 기류 탓이다. 기온이 높은 낮에는 공기가 수직으로 오르는 난류가 발생한다. 이것이 남쪽에서 불어온 뜨겁고 습한 하층 제트기류를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밤이 되면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제트기류가 유입되면서 비를 뿌린다.
이따금 모르는 사람과 대화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만만한 소재가 날씨다. 날씨로 대화의 물꼬를 튼 뒤 서로의 관심사와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날씨가 무겁고 심각한 주제가 됐다. 날씨 얘기를 하면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정부의 환경·에너지 정책에 대한 찬반으로 이어지다가 대화 주제로는 최악인 정치로 빠지기도 한다. 당장 내일 날씨가 무섭고 어떤 기후재난이 닥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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