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알람 ‘너 혹시 페미야?’ 질문에 ‘물론이다’로 답하다[플랫][페친투어]
“어휴…” 좋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답답한 현실에 결국 말끝을 흐리고, 짧은 한숨을 쉬다가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본 경험, 누구나 있지 않으신가요?
백래시의 시대입니다. 어쩌면 이런 때야말로 더욱 더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눌 ‘페미니즘 친구’가 필요한지도 몰라요. 조금 낯설지만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든든해지기도 합니다. 백래시의 역풍을 맞으면서도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는 여성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묵묵히 실천해 가는 여성들, 플랫에게도 그런 친구가 필요합니다.
플랫은 여성서사 아카이브 채널로서 어떤 콘텐츠 제작자와 채널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는지 찾아보고 연대하려 합니다. ‘페미니즘 친구 투어’ 시작과 함께 무엇보다도 입주자님의 ‘첫 번째 페미니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플랫의 첫 번째 페미니즘 친구로, ‘너 혹시 페미야?’ 라는 질문에 호쾌하게 ‘물론이다’ 라고 답하는 봄알람 출판사(@baumealame)를 소개합니다.
봄알람은 ‘페미니즘 출판사’로서 2016년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일상 회화 메뉴얼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시작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범죄를 고발한 피해 생존자 김지은씨의 기록 <김지은 입니다>, n번방 가해자 재판 방청 기록을 담은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등 플랫 입주자님이 관심있게 읽으셨을 만한 도서들을 출간하기도 했어요.
지난 5일, 플랫팀은 봄알람 출판사의 이두루 대표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두루 대표도 플랫 입주자세요. 지난해 플랫팀에서 진행한 ‘여자가 용맹이 있어야지 - 기자들의 백래시 대응법’ 토크 콘서트에서 잠깐 만났던 기억도 있어요.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큰 우정은 쌓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플랫과 봄알람이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습니다.
- 최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봄알람 부스의 ‘너 혹시 페미야?-물론이다’ 포스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화제가 될 걸 예상하셨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서울국제도서전이나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 같은 도서계 행사에 참여하면 원래 ‘개장했습니다’ 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간판과 슬로건을 함께 찍어서 올리거든요. 지난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했는데 그때 슬로건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페미니즘’ 이었어요. 그 때도 ‘오’ 하고 보고 가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반응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실줄은 몰랐습니다.
-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슬로건을 제작하셨던 건가요?
예전에는 ‘봄알람’ 간판을 어떻게 쓸지 디자인 회의 정도만 했어요. 그런데 백래시가 심해지니까 메시지 전달을 하고 싶어진 거예요. 페미니즘이 굉장히 불리한 주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문구를 넣었어요.
백래시의 가장 좋지 않은 부분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성들이 실생활에서 침묵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잖아요. ‘너 혹시 페미야?’ 라는 질문은 굉장히 어리석은데 실제로 발화되면 위축시키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니까, 그 맥락을 바꾸고 싶었어요.
이 질문을 위협이 아닌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게 하자는 마음으로, 그래서 ‘너 혹시 페미야?’라고 묻는 질문은 조금 칠렐레팔렐레한 글씨체, ‘물론이다’라고 답하는 글씨체는 조금 더 단호한 글씨체로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답변이 조금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모든 것이 다 기획의 결과였군요. 도서전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봄알람은 ‘책마을’이라는 독립출판 부스에 작은 테이블 하나만 세워놓았는데, 책을 판매하는 5일 동안 제 머리 위 대각선 방향으로 사방에서 카메라 앵글이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스 앞을 지나가면서 ‘물론이다’ ‘물론이다’ 라고 같이 답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재미있었어요.
- 저는 사실 봄알람이어서 더 화제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많은 페미니즘 책을 낸 출판사잖아요.
초반에 온라인에서 알려진 건, 어떤 분이 X(구 트위터)에 간판 사진과 ‘봄알람이 너무 좋다’는 게시물을 올려주셨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출판해온 흐름과 간판의 문구가 연결이 된 건 맞지만 어느 시점 이후에는 봄알람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저 문구 너무 좋다’ ‘그럼 페미가 아니면 뭐야’ 식으로 얘기하셨고 이 문구를 말한 것이 누구인지와는 상관없이 퍼져나갔다고 느꼈어요.
- 사실은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이어서 화제가 된 것 같아요. 봄알람 출판사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도 조금은 특이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봄알람의 첫 책은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예요. 이민경 작가도 저도 같은 모임에 있었는데 이 작가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주변 여성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너무 소모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으니 ‘책을 쓰고 싶다,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린 거예요. 서로 알지 못하던 사이였는데 제가 편집자이니 편집을 하겠다고 했고, 우유니 디자이너도 의지를 보여서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게 봄알람이 시작되었습니다.
- 봄알람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나요?
‘영혼의 안식, 마음의 연고’라는 뜻의 프랑스어예요. 여성에게는 페미니즘이 몸에 좋은 것이니까요. 한글로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페미니즘의 봄을 알린다’는 뜻으로 이중적으로 쓰고 있어요.
- 봄알람의 구성원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저와 우유니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어요. 봄알람은 지금까지 27종의 책을 냈는데 제가 모든 책을 편집하고, 우유니 디자이너가 모든 책을 디자인했어요.
- 두분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출간할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봄알람에는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김지은입니다’ 등 베스트셀러도 있었잖아요. 좋은 책을 만드는 비결도 궁금해요.
전혀 비결이랄 것이 없어요. 저희의 원칙은 시작할 때부터 딱 하나예요. ‘페미니즘 출판사’죠. 이렇게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는 출판사가 없잖아요. 봄알람의 책들은 관심있는 주제만 의욕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는 성매매 관련 책을 2권 냈어요.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이라는 책은 반성매매 활동을 20년간 하신 활동가 선생님이 대한민국 성매매의 특수한 탄생 배경, 시장화되어 자본과 결탁된 특징 등을 정보성 있게 이론서로 만든 책이고요.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은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탈성매매 이후 반성매매 활동을 하면서 발설해온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성매매 시장의 현실을 먼 곳에서 그저 슬프게 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도 이 현장을 함께 겪을 수 있도록 연출했어요. 책에는 현장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책 앞날개에 “어떤 성매매도 괜찮지 않다. 왜냐하면” 하면서 책의 내용이 시작되는거예요. 처음부터 끝장, 표지까지 당사자의 말로만 채웠어요. 이 책 전체가 “왜냐하면”의 이유가 되는 거죠.
- 책과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데, 괴로움은 없으신가요?
괴로움은 많죠. 그래도 저희는 이 일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 가치관과 연결되는 일이니까 열심히 하게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우유니 디자이너와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게 우리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고요. 한 번은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저희 신조를 좀 자세하게 정리를 했어요.
- 그때 정리하신 신조가 궁금합니다.
플랫과 비슷한 맥락일 거예요. ‘성차별적 현실에 개입하고, 여성의 경험에 힘을 실으며, 여성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상상력을 주는 이야기를 펴냅니다.’ (플랫의 신조는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모이는 곳. 플랫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때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변이 아닌 중심에 둔다’ 입니다.)
우리가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으면 그걸 기본값으로 생각하잖아요. 예를 들어 때리지 않으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플랫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타자화되고 있고 그 프레임에 맞춰지다 보면 내가 여성이 아닌 다른 인간으로 어떤 존재일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추구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봄알람은 프레임 밖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지식’들을 보급하고자 합니다.
- 평소 많이 맏으시는 질문이겠지만, 봄알람의 책을 한 권만 추천해 주신다면?
한 권만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도서전에서 정말 많이 받았는데, 사실 취향마다 다르게 추천하기 때문에 먼저 취향을 여쭤봅니다. 그러나 딱 한권을 고르라고 하면 <감옥으로부터의 소영>이요.
많이 팔린 책은 아니지만, 읽은 분들은 ‘올해의 책’으로도 많이 꼽아주셨어요. 재작년에 출간한 글인데 편지글 형식의 에세이예요. 60대 여성이 독재정권 시대에 독재라는 감옥, 운동권 내부에서 또 다른 감옥, 여성으로서 두 개의 감옥을 뚫고 나온 일대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담은 솜씨가 너무 특별해서 추천하고 싶어요.
저희가 사회과학서를 많이 내고 있는데 사실 독자들도 이슈파이팅만 하면 지칠 수 있잖아요.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의 원고는 투고로 바로 출간을 결정했는데, ‘제가 대표여서 이 책을 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출판사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 오늘 이 인터뷰는 플랫과 친구가 되는 자리인데요. 플랫에게 다른 친구를 추천해주신다면?
FDSC(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을 소개하고 싶어요. 우유니 디자이너가 FDSC 창립 멤버여서 제가 이분들의 조직 문화를 알 기회가 있었는데요. 특별하고 유쾌한 조직이예요. 직접 내규도 만들고, 커뮤니티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즐거운 분위기의 페미니즘 단체를 지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유니 디자이너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업계에 FDSC가 있어야 해”라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봄알람이 어떤 출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지속만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처음부터 페미니즘 출판사로서 계속 페미니즘 책을 낸다 그것밖에 없거든요.
- 조금 더 희망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사실 플랫도 입주자(독자) 분들로부터 ‘계속 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오늘 봄알람을 인터뷰하다 보니 입주자 분들이 왜 저희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너무 허심탄회하게 말했나요(웃음)? 그런데 저도 플랫에 계속 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계셔 달라고요. 그리고 ‘여성 평균임금의 ‘최정점’은 28~30세 남성이 이미 도달한 임금’ 기사가 너무 좋았다는 건 꼭 전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랫]여성 평균임금의 ‘최정점’은 28~30세 남성이 이미 도달한 임금
- 봄알람도 플랫도 계속 해야겠네요. 친구로서의 목표는 ‘지속하기’로 해요.
네, 버티기로요.
▼ 이아름 기자 areumlee@khan.kr
이아름 기자 areum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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