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침묵의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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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주재 대사로 부임한 다음 날 대사관저 근처 호수 같은 바다의 둘레길을 산책한 적이 있다.
스웨덴은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산성비 문제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 여론전을 펼쳤고, 과학적 검증과 국제 여론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여, OECD 주도로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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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주재 대사로 부임한 다음 날 대사관저 근처 호수 같은 바다의 둘레길을 산책한 적이 있다. 공기가 너무 신선해 잠시 멈춰 서서 들이마신 공기를 내뱉지 않고 오래 배 안에 간직하고 싶을 정도였다. 스웨덴을 떠나는 날 가득 안에 채워 가지고 갈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들었다. '왜 우리는 오염된 공기와 황사로 인해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스웨덴 사람들은 항상 질 좋은 공기를 누리며 산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스웨덴도 대기오염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50년대 북유럽 국가 호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는 재앙이 있었다. 스웨덴 과학자들의 연구와 데이터 분석 결과 '외부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SO2)가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70년대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과 서독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영국과 서독은 인정하지 않았다. 스웨덴은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산성비 문제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 여론전을 펼쳤고, 과학적 검증과 국제 여론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여, OECD 주도로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과학적 조사 결과가 축적되면서 '유엔 유럽경제위원회'가 주관하는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이 1979년 체결됐다.
이 협약은 대기오염물질 이동에 관한 공동연구와 상호 오염 감시 같은 느슨한 합의로 출발했으나, 이산화황을 감축하는 헬싱키 의정서(1985년), 질소산화물을 감축하는 소피아 의정서(1988년) 등 현재 8개 의정서로 확대됐다.
유럽 모델은 전 세계에서 국가 간 대기오염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유일한 사례다. 당시만 해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오늘날 매년 대기오염물질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감축 방법과 비용 분담을 논의하는 매우 잘 작동하는 모범적 국가 간 협력 모델로 자리 잡았다. 성공 비결은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를 따지기보다 큰 틀에서 '함께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문제도 유사하다. 중국에서 오는 다량의 오염원이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위성 추적 결과 등으로 확인된 바 있다. 중국은 유럽 사례처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과 중국은 1993년 한중 환경협력 협정에 따라 외교부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2019년 이후 매년 환경 장관회의를 개최하여 미세먼지 대응 등 지역 환경 개선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인구의 99%가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대기오염은 한 해 700만명의 조기 사망을 초래한다고 한다. 대기오염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심각한 건강 위기다. 동북아에서도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 같은 협력 메커니즘이 만들어져 맘껏 숨 쉬고 사는 안전한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규 전 주스웨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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