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동일의 인사이드 K컬처...'호랑이는 살아있다'-③

성도현2 2024. 7. 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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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동일 교수 본인 제공

|이동일 연출가(연극학박사). 단국대 교수, 현 서강대 초빙교수.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연출, 덴마크 합작 프로젝트 '전쟁 후에(After war)' 등 총체극과 통섭형 작품 다수 연출.

백남준 선생의 작품 '호랑이는 살아있다'의 제작 의도는 한국인의 삶 속에 깊이 스며있는 용맹함과 기품 그리고 해학의 상징이자 민간신앙 속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호랑이를 21세기 한국인의 기상과 미래 지표로 설정해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역사적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반만년 동안 굳건히 산야를 누비며 생존해 온 호랑이의 기상과 강인한 생명력을 21세기를 열어갈 한국인의 미래상으로 제시한다는 의도였다.

이러한 의도는 백남준 선생의 기존 작품과 호랑이 민화의 이미지들, 전통 굿, 냉전의 상징들, 자연과 상생의 상징들,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대중문화예술과의 예술적 소통 등을 통해 표현했다.

작품의 시작은 초기에 백 선생이 주장했던 'LIBIDO 2000'에서 시작됐다.

냉전의 상징 DMZ를 생명의 상징으로 바꾸는 남녀의 춤 이미지와 세계적인 대중가수의 라이브 공연으로 형상화하려 했다.

백 선생의 오랜 예술적 동지였던 현대무용의 대가 머스 커닝햄이 춤 장면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백 선생과 인연이 있었던 영국의 데이비드 보위, 미국의 로리 앤더슨과 피터 가브리엘, 중국의 최건 등의 대중 예술가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아쉽게도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어서 한국 특유의 문화적 힘의 원천인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진도씻김굿 등 세계 기준에서도 우수한 아주 오랜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양한 장면과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파주 자유의 다리에서 리허설 중인 'DMZ 2000'의 한장면 이동일 교수 제공

백 선생은 전통적 형식의 이미지가 아닌 비디오 아트 형식의 이미지를 위해 필자가 촬영한 진도씻김굿 로스앤젤레스 공연의 영상을 사용했다.

또한 전통 속의 해학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낙천적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전통 민화 속의 다양한 호랑이의 모습을 넣었다.

호랑이는 급격한 산업화와 기적적 현대화를 이뤄낸 한국의 시장 골목에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전통적 가치관을 상징한다. 백 선생은 현대와 전통이 상생하며 공존하는 한국만의 문화에 주목했다.

그는 20세기 말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정보화 사회를 선도하던 한국은 전통시장과 전통 굿이 교회와 절과 함께 상생하는 이상해서 매력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호랑이는 백두산과 금강산에도, 설악산과 한라산에도 그리고 비무장지대에도 살아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자고 했다.

한반도의 호랑이는 유목민의 피를 가진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다.

백남준 선생은 한국인이 좁은 한반도에 머무르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주창했다. 일본과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한 마리의 호랑이가 바로 백 선생이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의 백남준 친필 기획 스케치 이동일 교수 제공

선생에게 호랑이는 '정보'와 '결속'이고 '언어'이자 '사상'이며 '재미'였다. 또한 '자존'이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플럭서스'(Fluxus: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으로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였다.

그는 비디오라는 발명품을 민주적 쌍방향 의사소통 매체로 변신시켜 비디오 아트와 로보틱스 아트 그리고 레이저 아트로 이어지는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가 됐다.

'백두산 호랑이'라고 본인을 신격화했던 북한의 김일성은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다.

김일성에 이어 독재정권을 이어받은 김정일은 호랑이가 사자를 무참히 제압하는 비디오를 체제 선전용으로 만들어서 배포했다.

백남준 선생은 냉전의 상징인 작품 속에서 이 영상을 한국 전통 민화의 호랑이와 대치시킨다.

선생이 작품 속에서 선보인 우리의 전통 민화는 양반을 상징하는 호랑이, 까치가 상징하는 서민, 토끼가 상징하는 상인 등과 함께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계층을 넘어선 상생을 상징하는 해학적인 대중예술이었다.

민화 속 호랑이는 본인을 대중 예술가라고 주장했던 새로운 차원의 해학정신을 작품들 속에 구현해 왔던 백남준 선생의 예술관과 잘 어우러지는 상징적인 동물이었다.

또한 벽사와 수호의 의미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21세기를 여는 새해에 전 세계에 선보인 한국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도 매우 상징적 시도였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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