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전당대회 '김여사 문자 논란' 과열…"감정싸움 안돼" 우려도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를 뽑는 7·23 전당대회가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총선 전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 사과 의향'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읽씹'(읽고 무시했다는 뜻의 은어) 논란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당내 친윤 중진 그룹까지 나서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어서다. 당내에선 깊어진 후보들간 갈등의 골로 인해 전당대회 이후 보수 진영이 분열하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이 김 여사의 문자 전문을 공개한 이후 친윤(친 윤석열 대통령)계가 일제히 한 후보를 향한 비판 메시지를 냈다. 대표적 친윤 인사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NS에 이번 논란과 관련해 "총선 승리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비대위원장은 모든 것을 시도했어야 했다"면서 "한 후보는 당시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이것이 총선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사과하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 후보 측에서 제기하는 김건희 여사 사과의 진정성 여부와 공사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정치는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고, 그 결과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친윤 김기현 의원도 SNS에 "공개된 메시지 전문을 보면 김 여사는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겠다는 내용으로 읽히는데, 한 전 위원장은 어느 대목에서 '사실상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파악했다는 것인가"라며 "자신의 정무적 판단 오류에 대해 쿨하게 사과하라"고 했다.
최근 총선백서 제작 과정에서 친한계 측과 갈등을 빚은 조정훈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 당시 이렇게 중요한 제안이 왔는데 이것을 왜 정무적으로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했느냐, 이게 문제의 본질"이라며 "한 후보가) 100번 다니는 것보다 (김 여사가) 사과를 한번 진정성 있게 했다면 20석 이상은 우리에게 더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1호 참모를 자처해 온 장예찬 전 최고위원 역시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장 전 최고위원은 한 후보가 김 여사의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을 두고 "차라리 정치적 무능이었으면 좋겠다"며 "대통령과의 의도적인 차별화를 위해 영부인 악마화를 용인한 건 아닌가"라고 했다.
한 후보와 대척점에 선 당권후보들의 공세도 이어졌다. 나경원 당 대표 후보는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김 여사는) 가장 논란이 되는 이슈의 당사자였고 어떤 형태로든 진솔한 표현의 말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후보의 기대였다"며 "이것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는데 이걸 답하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는 것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해야 하는 직무를 해태했다고 보고 이에 한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후보도 이날 오전 SNS(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문자의 핵심은 김 여사가 자신의 잘못으로 기인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사과 의도를 명백히 밝혔다는 것"이라며 "문자 공개 경위는 차치하더라도 후보가 답변조차 보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직을 떠나 인간적인 예의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라고 했다.
친윤계 인사들과 당 대표 경쟁자들의 집중포화에 대해 한 후보측은 친윤계와 원 후보 측의 악의적 정치 공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후보 캠프 신지호 총괄상황실장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전날 TV조선이 공개한 김여사 문자 원문의 내용에 대해 "사과하겠다기보다는 사과하기 곤란하다 쪽으로 당시에 인식을 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친한계 인사인 장동혁 최고위원 후보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전후 맥락을 보면 1월 20일경에 대통령실의 참모진들도 지인들에게 사과하면 안 된다(고 했다)"며 "그리고 그 무렵에 또 이용 의원도 우리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이 있는 전체 단톡방에 '절대 사과하면 안 된다'고 동영상까지 링크해서 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당시 여러 움직임과 전후 맥락을 보면 한 후보는 (김 여사가) '사과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한 후보의 러닝메이트 격으로 최고위원에 도전장을 낸 박정훈 후보는 이번 문자 논란을 '자해극'이라 평가했다. 박 후보는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본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결과적으로 대화를 나눈 김건희 여사께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라며 "한동훈 전 위원장은 어제 여론조사도 나왔지만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사태 이후 조사인데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추세를 보인다. 한 전 위원장은 별 피해를 본 게 없다"고 반박했다.
당내에선 김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 가열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 간 치열한 경쟁이 붙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지만 서로 감정을 건드리는 건 없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진흙탕 싸움이 계속된다면 전당대회 이후가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현재 108석에 불과하다. 깊어진 감정의 골로 인해 단일대오가 무너진다면 윤석열정부의 미래도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축제가 돼야 할 전당대회가 후보들간 이전투구로 얼룩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당의 미래와 비전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당의 재건은 물론 정권 재창출 기회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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