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 ‘피해 속출’…불어난 물에 고립되고 국가유산도 훼손

8일 집중호우로 충북 옥천서 1명 사망
9일 경북 경산서 40대 급류에 휩쓸려 실종
‘한양도성’,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문화유산도 피해

9일 오후 경북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 소하천에서 소방구조대가 폭우에 실종된 여성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칠 듯 이어지는 긴 ‘장맛비’에 전국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특히 늦은 밤과 새벽 사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야행성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8~9일 경상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8일 충북 옥천에서는 축대가 무너지며 50대 남성 1명이 사망했고, 9일 경북 경산에서는 40대 여성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번 장맛비는 대기 하층에서 빠르게 부는 고온다습한 바람인 ‘하층제트’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람이 정체전선을 밀어 올리면서 수증기가 공급돼 비가 내리는 형태다. 하층제트는 밤에 강하기 때문에 ‘야행성 폭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경북에서는 밤사이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로 도로와 주택이 침수돼 7일 오전 0시부터 8일 오전 6시까지 34명이 구조됐다. 또 8일 오후 5시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4명이 추가로 구조됐다.

경산에서는 9일 40대 여성 A씨가 실종됐다. 진량읍 평사리 소하천인 부기천 인근을 운전 중이던 A씨는 자동차가 물에 잠기자 차량 밖에 나와 잠시 서 있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린 것으로 파악됐다.  

충북 옥천 한 주택의 붕괴된 축대에서 매몰자를 수색하는 소방대원들. 충북도 소방본부

사망사고도 있었다. 8일 옥천군 옥천읍의 한 주택에서 절개지 축대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있었다. 약 7ｍ 높이의 축대가 빗물에 붕괴하면서 10ｔ가량의 토사가 쏟아졌다. 이 사고로 집 뒤편 배수로를 확인하러 나갔던 50대 남성 B씨가 토사에 깔리며 사망했다.

대구 군위군 의흥면 읍내리에서는 8일 오후 집중호우로 하수구가 역류하며 집 안에 갇혔던 주민이 구조됐다. 대전 서구 가수원동의 한 상가도로에서는 침수된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70대 트럭운전자가 구조됐다.

학교도 안전지대가 되지 못했다. 8일 경북 안동의 성창여고는 산사태로 체육관 벽체가 파손되고 주차장에 토사가 유입됐다. 학교 측은 즉시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9일은 ‘자체 휴업’을 실시했다. 

비에 무너진 한양도성 성곽 일부 구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 피해도 있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던 ‘한양도성’ 일부가 8일 오후 무너졌다. 붕괴된 곳은 북악산 백악쉼터 인근 한양도성 성곽 약 30ｍ 구간이다. 한양도성은 서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성곽 유적으로 조선 건국 초에 태조가 수도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했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탕춘대성을 잇는 ‘한양의 수도성곽’은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돼 예비평가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도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는 기술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한 곳인 충남 공주 공산성 탐방로 일부도 유실됐다. 유실된 곳은 영은사에서 만하루·연지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현재는 관람객 접근 차단을 위한 안전띠와 장막이 설치돼 있다.  

천연기념물인 안동의 용계리 은행나무도 가지 1개가 부러졌다. 수령이 7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나무를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장마철 집중 호우로 인한 국가유산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며 “추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 보수 사업 대상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