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다큐’ 칸 상영 때문?…중국 외면받는 자국 영화에 검열 추가

박은하 기자 2024. 7. 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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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미완성 필름’ 칸 상영 두 달 만
해외 영화제 단편영화 출품 시 사전 신고
“통제 강화로 자국 영화 더욱 외면” 우려
러우예 감독의 영화 미완성 필름(An Unfinished Film)의 한 장면.

앞으로 중국 영화감독이나 제작사가 해외 영화제에 단편영화를 출품하려면 당국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19 정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것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검열로 위축된 중국 영화계를 더욱 옥죄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9일 중국 영문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영화담당 기관 국가전영국은 최근 “국내에서 제작된 모든 단편영화를 해외 영화제나 전시회에서 공개 상영하려면 당국에 사전 등록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지에 따르면 해외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려는 법인은 최소 상영 20일 전까지 영화제 명칭, 날짜, 장소, 영화 내용 요약본 등을 영화 개봉 허가증 사본과 함께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중국 당국은 새로운 조치의 시행 배경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장편영화에 적용되던 규정을 단편영화에도 적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상영을 허가받지 못한 코로나19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독립영화 감독 러우예가 연출한 <미완성 필름(An Unfinished film)>이 지난 5월 16일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스페셜 스크리닝’에 상영됐다.

<미완성 필름>은 코로나19 봉쇄 기간 시민들이 겪은 생존 노력을 담은 영화이다. 2020년 1월 우한의 한 호텔에 모인 제작진은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원래 촬영 중이던 영화 제작을 어쩔 수 없이 중단하고 대신 호텔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혼란과 소동,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생존 노력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실제 뉴스 장면도 영화에 삽입됐다. 봉쇄 기간 중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와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희생자에 대한 애도 장면도 담겼다.

의무격리나 국경봉쇄 등 구체적 봉쇄 조치 과정은 당국 검열로 삭제됐다. 백지시위나 봉쇄 기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묘사도 담기지 않았다. 영화는 중국에서는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러우 감독은 이전에도 당국 승인 없이 해외 영화제에 참석해 영화 제작이 금지된 적 있다.

칸 상영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칸에서 영화를 접한 중국인 관객들은 코로나19 봉쇄 기간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고 평가했다. 한 네티즌은 지난 5월 칸에서 영화를 봤다며 “내 기억과 영화의 묘사가 합쳐지면서 영화가 정서적 힘을 갖게 됐다”고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평했다.

반면 웨이보에서 약 2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영화 블로거 ‘홍캉010’은 러우 감독을 ‘중국의 반역자’라고 부르며 “서방 매체에 우리 시스템을 공격할 먹이를 던져줬다”고 비판했다. 이후 약 두 달 만에 당국의 조치가 발표된 것이다.

난징대 국가문화산업연구센터의 영화 전문가 장펑 연구원은 글로벌타임스에 <미완성 필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국제 영화제에 출품하는 영화에 대한 관리 강화는 해외에서 상을 받기 위해 서구 사회가 고집하는 특정 가치와 선호도에 부응하는 행동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며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더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앞서 2016년 ‘영화산업 진흥법’을 마련해 이듬해 3월부터 시행했다. 우수한 중국 문화와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옹호하는 영화 제작을 지원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중국 당국은 2018년 영화 검열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 규제에 대한 책임을 국무원에서 공산당 선전부로 이관해 영화 내용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 영화계는 정작 부진을 겪고 있다. 영화 예매사이트 먀오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극장가 흥행수입은 총 239억2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9%(23억2800만 위안) 감소했다. 관객수는 연인원 5억500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5500만 명 줄었다. 중국 매체 계면신문은 “관객들이 영화관에 등을 돌리고 있다”며 “양질의 콘텐츠가 공급돼야만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국의 통제야말로 중국 영화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팬들의 의견이다. 올 상반기 대표 흥행작인 대만 범죄영화 <주처제삼해>는 시사회에서 ‘당국 검열로 정식 개봉에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볼 수 없을 것’이란 마케팅을 하며 입소문을 만들어내 흥행했다.


☞ 중국에서 대만 범죄영화 흥행 돌풍…왜?
     https://www.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3141736001

한 네티즌은 웨이보에 올린 <주처제삼해> 리뷰에서 “중국에서는 제대로 된 성인을 위한 영화를 볼 수 없다”며 “아동화, 단편화, 유량화(스트리밍화)”를 중국 영화계의 3대 악으로 꼽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영화팬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출현과 돈 되는 몇몇 작품에만 투자가 몰리는 현상은 현재 전 세계 영화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에 더해 당국의 통제까지 영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거장들도 더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전했다.

장이머우 감독의 문화대혁명을 다룬 영화 <원 세컨드>는 2019년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다 급작스럽게 취소됐는데, 이 때에도 당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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