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이스라엘 가자 북부 맹폭에 “협상 멀어져” 경고···수천명 또 피란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휴전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를 재차 맹폭하자 하마스가 “협상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적인 일들이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겨냥해 “휴전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는 휴전 협상이 다시 무산될 경우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일부 지역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은 데 이어 이곳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명령을 내리고 지상전을 재차 개시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탱크는 최소 세 방향에서 진격하고 있으며, 이미 가자시티 중심부에 진입한 상태다. 주민들은 전쟁 발발 후 지난 9개월간 이 일대에서 가장 강도 높은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에 하마스 잔당이 숨어들었다며 이곳 거점을 파괴하는 작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초기 공격이 집중됐던 곳으로, 이스라엘군은 지난 9개월간 이곳에서 군사 작전을 여러 차례 반복해 왔다. 이곳에서 하마스 세력을 모두 소탕했다며 지상군을 철수시켰다가 다시 돌아와 작전을 재개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에 따라 주민들도 피란길에 올랐다가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면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했다. 이날 수천여명의 북부 주민들이 또다시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세 자녀와 함께 피란길에 오른 사예다 압델 바키는 AP통신에 “이번이 다섯 번째 대피”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며 대피를 거부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이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명령한 중부 데이르 알발라와 인근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선 지난달 이스라엘군이 자국민 인질 4명을 구출하며 피란민 274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갈 곳을 잃은 피란민 수십만명이 무더위 속 이곳 텐트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날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최소 40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강도 높은 지상전이 진행 중인 북부지역 희생자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현지 소식통은 가자시티 일부 지역은 폭격으로 구조대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신까지 고려하면 사상자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AP통신 등에 말했다.
전날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협정을 맺더라도 이스라엘군이 언제든 전쟁을 재개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새 요구 조건을 내건 데 이어, 보란 듯이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한때 높아졌던 협상 타결 기대감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협상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립정부 내 극우 인사들로부터 휴전에 합의할 경우 연정을 붕괴시키겠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휴전을 성사시킨다면 총리가 실각하지 않도록 야당이 돕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연정 붕괴를 빌미로 총리를 압박해온 극우세력 눈치를 보지 말고 빨리 휴전 협상을 마무리지어 인질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피드 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을 구하는 일과 총리직 임기를 보장받는 것 중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다”면서 “나는 총리에게 ‘안전망’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라피드 전 총리 발표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 정치권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야당의 제안을 수락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크네세트(의회)가 휴회하는 7월 말까지 휴전 합의를 미루며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휴회 기간 휴전 협상을 타결하면 의회 내 휴전 반대세력의 조직화된 연정 붕괴 시도를 막아내기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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