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배' 감독 잃은 울산 "홍명보 우리가 보내주는 것, 마음 움직인 자 멋지게 보내주자"
[스포티비뉴스=조용운 기자] 시즌 도중 '감독 빼가기'에 큰 상처를 입은 울산 HD가 일련의 사태에 입장을 밝혔다.
울산은 9일 김광국 대표이사 명의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구하자는 차원에서 글을 올린다"며 "홍명보 감독이 떠난다. 많은 팬이 속상해 하는 감정을 존중한다. 우리 팬들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거의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사령탑을 떠나보내는 절절한 감정을 토했다.
울산은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으로 간다. 우리 구단이 보내주는 것이다. 우리 구단이 리그를 가볍게 보거나 구단의 목표와 팬의 염원을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우리 구단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종 결정과 책임은 홍명보 감독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떠나야 할 시점이 도래했고, 새로운 도전과 목표에 마음이 움직인 상대는 보내주어야 한다. 멋지게 보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홍명보 감독이 꽃길만 걸을 수도 있고,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행복한 순간에도, 어려운 상황에도 그때마다 우리 구단과 팬들을 생각하면서 멋진 날을 돌이켜 보게 하는 게 더 멋진 일이 아닐까 한다"고 가능한 아름다운 이별을 당부했다.
끝으로 울산은 "새로운 훌륭한 감독을 모셔와서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홍명보 감독 후임 감독 작업을 열심히 진지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인 K리그 3연패도 흔들림 없이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5개월 동안 공석이던 A대표팀의 수장으로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물론 2027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대표팀으로 이동에 거절 입장을 보였던 홍명보 감독은 지난 5일 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를 만나고 10시간 만에 수락 답변을 보냈다. 이임생 기술이사는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의 최종 후보 중에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 축구협회가 추구하는 게임 모델과 연령별 대표팀 연계에 있어서도 가장 적절하다. 성과 측면에서도 외국인 후보자들보다 더 낫다고 판단했다"라고 선임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우승에 도전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K리그 현직 감독을 빼가는 축구협회 행동에 강한 비판이 따른다. 홍명보 감독 역시 계약기간을 준수하지 않는 무책임한 판단으로 울산 팬들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안겼다.
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축구협회의 결정은 처용전사와 한국 축구 팬들의 염원을 무시한 선택이며 다시금 큰 상처를 입힌 이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러한 비극적인 선택의 결말은 실패할 것임이 자명한 사실이다. 역설적인 결과를 거둔다고 해도 그것은 축구협회의 공이 아닌 울산을 포함한 K리그 팬들의 일방적인 희생의 대가로 만들어낸 결과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
이에 울산 구단이 직접 나서 "홍명보 감독을 멋지게 보내주자"고 작별 인사를 했다.
홍명보 감독은 처음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후임으로 첫 손에 꼽혔다. 100여 명의 지도자를 후보군에 올리고 검증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가 항상 국내파 감독으로 높은 점수를 줘 왔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을 맡아 K리그1 2연패를 달성했고, 올해도 선두권을 유지하며 좋은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축구협회는 5개월의 시간을 외국인 감독 찾기에 열중한다고 누차 말해왔기에 홍명보 감독으로 노선을 급히 바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사퇴 의사를 밝힌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5월 유럽에서 제시 마치 캐나다 대표팀 감독,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 등을 만나기도 했다. 이번 주 이임생 기술이사도 유럽 출장에서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과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 감독과 면담했으나 국내파보다 나은 이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외국인 지도자를 찾지 못한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 설득에 나섰다.
홍명보 감독은 현역 시절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이다. 지도자로서도 연령별 대표팀부터 차분히 단계를 밟아 주요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뤄냈고, 이 연령대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지도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3년 A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다만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소방수로 낙점을 받은 거라 준비 과정 없이 바로 본선에 나서야 했다. 결국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이후 행정가로 변모한 홍명보 감독은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능력을 받았다. 축구협회의 건강한 행정력을 발휘한 시기가 이때다. 2021년 울산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 뒤 2022년과 2023년 K리그1 정상에 올려놓으며 변함없는 지도력을 보였다. 올해도 울산을 선두권에 올려 구단 첫 3연패에 도전하던 중 국가대표 감독으로 복귀하게 됐다.
▲ 다음은 울산 입장문 전문
울산 HD 팬 여러분, 홍명보 감독 관련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구하자는 차원에서 글을 올립니다. 홍명보 감독이 떠납니다. 많은 팬분들이 속상해합니다. 또한 약속을 어겼다며, 거짓말을 했다며, 존중받지 못했다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충분히 충분히 팬들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우리 팬분들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거의 똑같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평생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 나를 떠나간다고? 거짓말쟁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나한테 약속했잖아, 저 딴 애보다 내가 훨씬 멋있다고 했잖아" 이런 감정 말입니다.
홍 감독은 국대로 갑니다. 우리 구단이 보내주는 겁니다. 홍 감독에게도 혹시나 국대 감독 선정에 실패하고 최선이 홍 감독이라며 요청을 해온다면 도와줘야 한다는 메시지는 수시로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구단이 리그를 가볍게 보거나 구단의 목표와 팬의 염원을 가볍게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구단만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최종 결정과 책임은 홍명보 감독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 구단에 2개의 별을 달아준 감독입니다. 자식을 둘이나 낳고 3년 반이나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보내주는 게 좋을까요?
사랑하던 사람과의 헤어짐에는 일방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떠난다고 했을 때, 평생을 사랑하겠다고 했던 둘의 맹세를 떠올리며 배신감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홍 감독은 우리가 보내는 겁니다. 떠나야 할 시점이 도래했고, 새로운 도전과 목표에 마음이 움직인 상대는 보내주어야 합니다. 멋지게 보냈으면 합니다.
홍 감독이 꽃길만 걸을 수도 있고,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어려운 상황에도 그때마다 우리 구단과 팬들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멋진 날을 돌이켜 보게 하는 게 더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새로운 훌륭한 감독 모셔와서 행복하게 잘 살 겁니다. 처음에 홍감독에 대해서도 일부 미흡한 마음을 느끼셨던 분들도 있는 것처럼, 처음엔 미흡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 감독도 강력한 구단과 멋진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더욱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홍명보 감독 후임 감독에 대한 작업을 열심히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단을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목표인 리그 3연패도 흔들림 없이 달성합니다.
내년도 클럽월드컵에서도 멋지고 치열한 경기력으로 세계 최고의 클럽팀들 사이에서도 팬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자랑스러워할 빛나는 시간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홍 감독과의 이별도 멋지게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설영우, 마틴 선수를 보낸 것처럼 절실한 심정으로 응원하며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우리 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울산의 팬이어서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구단과 한마음으로 같이 극복하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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