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숨겨 쫓겨나자 ‘국회 불출석’…국정원 출신 감싸는 진화위의 ‘꼼수’

고경태 기자 2024. 7. 9. 15: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일 행안위에 이상훈 상임위원 대신 출석 계획 잡아
이옥남 상임위원도 ‘유족 점거농성’ 피해 핑계로 입원
지난 5월27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황인수 조사1국장이 뒷자리에 앉아 웃으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국회에서 ‘변장 출석’으로 물의를 빚은 황인수 조사1국장을 오는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시키지 않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 출신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 유족 폄훼’로도 비판을 받는 황 국장을 비호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오전 열린 진실화해위 제82차 전체위원회에서 이상훈 상임위원은 “오늘 오전에 제가 11일 국회(행안위)에 출석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래 황인수 조사1국장이 가기로 돼 있었는데, 왜 바뀐 것이냐”고 따졌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원래라는 것은 없다. 현재로써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리라고 판단돼서 황인수 조사1국장이 출석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동일한 문제’란 지난달 19일 열린 국회 행안위 업무보고 때 마스크와 두꺼운 안경을 끼고 출석해 발언대에 선 황 국장이 얼굴을 드러내라는 의원들 요구를 거듭 거부하다 강제 퇴거한 일이다. 당시 황 국장은 “(진실화해위에) 입사하자마자 개인정보보호 요청서를 제출했다”며 버텼다. 하지만 행안위 확인 결과 국가공무원법·국정원법, 국회법 어디에도 공무원이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려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황 국장이 제출한 개인정보보호 요청서 역시 내부 공식 검토를 거치지 않은 개인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 국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행안위에서 김 위원장, 이옥남 상임위원과 함께 7월2일 다음 회의의 증인 출석 요구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진실화해위 쪽은 “7월2일 회의가 취소됐으므로 출석 요구도 실효(효력이 없어짐)가 됐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신정훈 행안위원장은 “증인으로 출석요구한 게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예상되는 결석에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했다. 이상훈 상임위원도 이날 한겨레에 “황 국장은 본인 주장이 정당하면 국회에 나가 의원들을 설득해야지 참석 회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인 황 국장은 지난해 6월 채용 시점부터 “부적절하고 비상식적 인선”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부임 뒤에도 조사관들에게 ‘종북을 척결하자’는 취지의 신년 편지를 보내거나, 지속해서 국가폭력 피해자 유족들을 헐뜯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왔다.

이날 전체위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은 황 국장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1소위 회의 보고를 위해 두꺼운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보고석에 앉자 ‘변장’ 문제를 김 위원장에게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상희 위원은 “(안경과 마스크로 변장하고)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조차 이렇게 책임 있는 모습으로 일하지 못한다면 과연 조사1국 책임자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마스크 쓰는 것과 책임 있는 업무 수행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황 국장을 두둔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 복장은 20년 이상 (국정원에서) 활동하면서 함께 했던 제3자 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개인정보보호 요청서와 관련해서는 “채용 과정에서 한겨레와 문화방송(MBC)에 신상이 노출되는 상황을 거론하며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언론 핑계를 댔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에 앞서 지난 2∼3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피학살자유족회) 회원들이 진실화해위에서 농성한 일을 언급하며 “그 과정에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당한 이옥남 상임위원은 다음날 4일 병원에 다녀오고 출근했지만, 현기증과 구토 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약 2주간 가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족들 성명서에 나오는 ‘조국해방공간’이 북에서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을 의미한다며 이념 공세를 펼칠 뜻도 밝혔다. 이옥남 상임위원 역시 유족들의 점거농성에 의한 피해를 이유로 11일 국회 행안위에 불출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피학살자유족회 쪽은 3일 “이옥남 상임위원이 2일 오후 경찰까지 불러 ‘황제 퇴근’을 해놓고 무슨 소리냐. 시멘트 바닥서 김밥 먹으며 밤을 새우고 경찰에 들려나간 유족도 생각해보라”며 점거농성 피해 운운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