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외톨이였던 ‘그녀’들의 100년史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7. 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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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출간된 문예지 '현대문학' 88호에 수록된 단편소설 '잔양(殘陽)'에는 미군 장교 전용 '쇼걸'로 일하는 미쓰 윤이 나온다.

한국문학사를 시계열로 보고 경중을 비교하면, 여성 작가 이름이 남성 작가 이름의 무게에 짓눌렸기 때문이었다.

한국 여성문학 100년사를 관통하는 유의미한 선집이 출간됐다.

민음사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9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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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발간
“주류문학사에서 배제됐던
여성문학 역사적인 계보”

1962년 4월 출간된 문예지 ‘현대문학’ 88호에 수록된 단편소설 ‘잔양(殘陽)’에는 미군 장교 전용 ‘쇼걸’로 일하는 미쓰 윤이 나온다. 당시는 전쟁중이었고, 결핵이 확산하자 가짜 검진서가 필요했던 윤은 S병원을 찾는다. 윤은 의사 앞에서 가슴을 풀어 헤치는데, 당시만 해도 의사들은 월경은 언제 시작했는지, 성병은 없는지 등 불필요한 질문으로 여성을 희롱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의 표지.
사석에 모인 의사들은 “그 여자의 팽팽한 스커트”, “스커트 위에 나타난 히프의 볼륨” 따위를 거론할 정도였다. 전시(戰時)의 여성은 ‘군인 앞에서도, 의사 앞에서도’ 덫에 걸린 약자였음을 소설은 풍경으로 증언한다.

‘잔양’의 작가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월남한 여성 작가 이정호(1930~2016)다. “성적 폭력, 그리고 전쟁이라는 남성적 카니발리즘”(김은하 경희대 교수)을 묘사한 뛰어난 작가였지만 그의 이름은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거론되지 못했다. 한국문학사를 시계열로 보고 경중을 비교하면, 여성 작가 이름이 남성 작가 이름의 무게에 짓눌렸기 때문이었다.

한국 여성문학 100년사를 관통하는 유의미한 선집이 출간됐다. 민음사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9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의 저자들. 왼쪽부터 이선옥 숙명여대 교수, 이희원 서울과기대 명예교수, 김양선 한림대 교수, 이명호·김은하 경희대 교수, 이경수 중앙대 교수. [민음사]
김은하 교수는 “1968년 등단한 오정희 소설가, 1970년 등단한 박완서 작가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여성문학이 거의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던 시기”라며 “여성문학은 역사적 계보와 독자적인 문학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 시간 의심받아온 여성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됐던 여성문학을 온전히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여성문학 연구의 정전으로 평가받을 이번 선집은 총 7권으로, 총 3256쪽에 달한다.

친숙한 이름인 박경리, 김남조, 전혜린, 박완서, 강은교, 오정희, 김채원, 최승자, 김혜순, 양귀자 등의 이름을 문자적인 악보 위에서 확인하는 재미도 크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을 발견하고 시대의 울타리를 극복하려 했던 작가들의 상상력을 원문으로 확인하는 놀라움도 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 제4권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표지. [민음사]
1990년대를 다룬 마지막권(제7권)의 제목은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적 글쓰기’로 배수아 ‘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 한강 ‘내 여자의 열매’, 하성란 ‘치약’, 나희덕 ‘어린것’,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등이 포함됐다.

선집의 출간에 12년이 걸렸다는 사실도 주목을 끈다.

김은하 교수는 “1980년대로 오면서 현역 작가들이 많았는데, 당대 작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의 어려움, 또 선택과 배제의 과정이 권력의 작용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심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번 선집 발간에는 김양선 한림대 교수, 이선옥 숙명여대 교수, 이명호 경희대 교수, 이희원 서울과기대 명예교수, 이경수 중앙대 교수 등 총 6인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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