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물가에 美 소비업계, ‘울며 겨자먹기’ 할인으로 고객 유인

민서연 기자 2024. 7. 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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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현재까지 지속 중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시민들은 고물가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비단 시민들에게 국한되는 사실이 아니다. 외식업계나 소비재 업체가 가격을 당장 올리고 싶지 않더라도, 제조단가나 조달원가가 비싸지면 어쩔 수 없이 소비자들에게 닿는 가격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최근 미국 외식업계와 식품업계는 잡히지 않은 인플레이션에도 이전보다 가격을 낮추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껏 소비재 기업들은 원가가 오르면 그에 발맞춰 족족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펼쳐왔는데 생각보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재의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시장을 떠나버리는, 소비 침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몬델레즈의 대표 제품 토블론이 할인 중이다./로이터

7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N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패스트푸드 업계 및 소비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할인 전략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수년간 제품 가격을 끊임없이 올려왔었지만, 지금은 제품 가격 할인은 기본이고 할인 쿠폰을 지급하고 대형마트에 추가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매장 진열대 중앙에 상품을 배치해 매출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리츠 크래커와 토블론 초콜릿을 만드는 미국의 식품기업 몬델레즈는 각 대형 마트의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경쟁하기 위해 자사의 인기 쿠키 칩스 아호이 쿠키 대용량 제품의 가격을 4달러 이하로 인하했다. 치리오스 등의 시리얼로 대표되는 미국 식품기업 제너럴 밀스는 올해 들어 할인 쿠폰 관련 비용을 20% 더 많이 지출했다.

이는 외식업계로 이어진다. KFC는 최근 4.99달러로 시작하는 ‘가성비’메뉴를 출시했으며 버거킹도 과거 출시했다가 사라졌던 5달러 세트를 다시 출시하기로 했다. 탄탄한 인기에 고물가에도 매출 타격이 없어 계속해서 가격을 올려왔던 맥도날드 조차도 프랜차이즈 점주들에게 5달러 세트를 판매하라고 전 지점에 요청하고 있다. 5달러는 한국돈으로 약 7000원이 조금 못되는 수준이다. 이외에도 타코벨과 웬디스 등 미국에 널리 퍼진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최근 수개월 간 가성비 메뉴 프로모션에 힘을 쏟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IQ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근 1년간 할인 행사 등으로 판매된 제품 비중이 28.6%로, 3년 전 25.1%에 견줘 3.5%포인트 증가했다. 루카 자라멜라 몬델레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업계 콘퍼런스에서 “올해는 특히 미국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어려운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라며 저가 제품을 선보인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뉴욕주의 나이키 매장. /로이터

미국의 물가 상승 곡선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풀 꺾인 물가 상승세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여전히 미국 내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고금리를 낮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특히 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인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국 가계의 생활비가 20% 넘게 치솟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인들은 지난해 소득의 11%를 식비로 사용했는데, 이는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야 집 밖에 나갈 수 없었고 여행 등 취미 생활에 쓰는 돈이 없어서 소비재들이 타격은 커녕 오히려 매출이 높아지는 효과를 누렸지만, 고물가의 장기화에 결국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 곳은 결국 식품 소비였다. 최근 미국 직장인들은 신선식품 대신 냉동야채나 라면 등을 찾으며 식비를 낮추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업계의 타격으로 이어졌다.

매출 타격은 즉시 주가로 이어졌다. 미국의 약국 체인 월그린스는 올해만 주가가 무려 57% 떨어졌다. 북미 지역 매출이 급감한 나이키도 결국 100달러(약 13만8000원) 이하의 신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껏 인상 전략으로 올해 8% 이상 오르며 미국 주가지수 신기록 경신을 이끌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의 소비재 관련주들도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점점 더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다.

카먼 앨리슨 닐슨IQ 부사장은 “업체들의 가격 인상 여력이 다소 고갈되면서 미국 매장에서 할인이나 광고 등의 행사에 포함된 품목 수가 작년보다 6.3%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들은 지갑으로 투표하고 있다”며 “가격을 공격적으로 올리면 소비자들은 브랜드나 매장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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