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배터리 업계, 韓中 공세에 휘청...생산 투자 줄여
전기차 판매 부진과 저가 中 배터리 공세에 수요 급감
韓 배터리까지 침투하면서 유럽 배터리 시장 휘청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세계에서 2번째로 전기차가 많이 팔린 유럽에서 현지 배터리 업체들이 잇따라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전기차 판매량이 기대보다 낮은데다 한국 및 중국에서 밀려드는 저렴한 배터리를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영국 배터리 컨설팅 업체 SC인사이츠를 인용해 올해 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생산 계획을 수정 및 철회하면서 기존 계획보다 생산량을 줄인다고 예상했다. 이들이 포기한 생산량은 올해 들어 158GWh(기가와트시)에 달하며 이는 약 200만대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영국 원자재 시장정보업체 CRU그룹에 따르면 유럽 배터리 기업이 2030년에 설정한 배터리 생산 목표는 1280GWh로 같은 기간 중국 기업(4413GWh)의 4분의 1, 미국 기업(1262GWh)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생산량을 장담하기 어렵다. CRU그룹은 유럽 배터리 생산 목표의 50%는 공장 건설이 지연되거나 가동률 저하로 제때 생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최근 배터리 과잉생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도 2030년까지 확실히 만들 수 있는 물량이 계획 대비 71% 추정되나 유럽보다는 사정이 나은 셈이다.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 노스볼트는 스웨덴에 생산량 60GWh, 1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각각 지을 예정이었으나 10GWh 공장은 건설을 취소하고 나머지는 착공 시기를 미뤘다. CRU그룹은 지난 2022년 이후 유럽에서 노스볼트 공장을 포함해 최소 7곳의 배터리 공장 계획이 취소되었으며 6곳은 건설 일정이 지연되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생산 계획을 축소하는 이유로 전기차 판매 부진 및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배터리 공장은 자본 집약적인 제조업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터리를 많이 팔 수 없다면 생산 시설을 확장해 봤자 고정비 지출만 커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팔린 전기차의 약 60%는 중국에서 팔렸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체 대비 각각 25%, 10%의 전기차가 판매됐다. 그러나 CRU그룹에 따르면 올해 1~5월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에 그쳤고 특히 5월 판매량은 1년 전에 비해 11% 감소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로모션은 2030년 유럽 전기차 판매량 예상치를 지난해 대비 15%p 낮췄다.
FT는 유럽 업체들이 그동안 니켈과 코발트 등을 사용하는 비싼 고용량 배터리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 기업들이 보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집중하면서 품질 또한 개선했다고 지적했다. SC인사이츠의 앤디 레이랜드 상무이사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배터리를 주문할 때 순서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정부 및 자동차 제조사가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 다면 "중국 기업들이 배터리 업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FT는 중국 기업과 동시에 한국 기업들까지 유럽에 침투중이라고 지적했다. 노스볼트는 지난 2020년에 독일 BMW에 20억달러(약 2조7666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BMW는 지난달 계약을 취소한다고 밝혔으며 해당 물량은 삼성SDI에 넘어갔다. 노스볼트의 페테르 칼손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발표에서 아시아 배터리 기업을 언급하며 "우리는 성능 면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면서 "우리는 생산 부분에서도 이길 수 있을 지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스볼트는 지난주 발표에서 향후 신규 생산 투자에 대한 전략적인 재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검토 결과에 따라 독일 및 캐나다, 스웨덴의 공장 신설이 지연될 수 있다. 이달 1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르노자동차의 전기차 부분 '암페어'와 2025~2030년 동안 39GWh의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는 약 59만대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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