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와 자전거...시공간 뛰어넘는 마술적 세계
선화랑서 아시아 첫 개인전
고대 문명 접목한 초현실적 화폭
회화·드로잉 60여 점 눈길
보시치는 캔버스 위에서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고, 때로는 고대 문명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를 탄 이의 몸통은 박물관의 토르소 조각상을, 얼굴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사랑의 여신 비너스상을 닮았다. 페달을 밟는 다리도 여러 문명에서 신화적 존재로 등장하는 말처럼 그렸다. 이처럼 역사와 일상이 맞닿은 장면들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그림을 통해 보시치는 예술가로서 신화와 문화, 환상의 영역을 탐구하고 현실과 잠재의식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의 개척 정신을 나타내고자 했다.
파토 보시치의 개인전 ‘마술적 균형: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것, 꿈의 풍경과 영혼의 상징적 지형을 가로질러’가 오는 8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풍경과 환상을 생동감 있고 매끄럽게 연결한 반추상 풍경화를 중심으로 회화 22점과 드로잉 46점 등 총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방한한 보시치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게 돼 기쁘다. 한국 관객들이 내 그림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보시치는 물리적으로 두 공간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예술사와 마주하기도 한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을 매일같이 찾아 아시리아, 메소아메리카,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같은 유물 컬렉션과 고전 회화를 감상하면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그 그림을 완성하는 식이다. 드로잉 연작 ‘Future Past’가 대표적이다. 그 중 한 작품은 박물관의 이집트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성이 강조된 여성을 드로잉한 뒤 작업실에서 그 여성과 뒤엉켜 있는 남성을 그려 완성했다. 스핑크스와 말, 부엉이 등 예술사에 등장하는 동물과 한몸처럼 그린 원초적 모습의 인체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보시치는 18살 고향인 칠레를 떠나 혼자서 스위스, 독일,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 지난 2000년 런던에 정착했다. 현지에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해 2004년 유럽 최대 규모 종합예술대학인 런던 예술대의 6개 칼리지 중 하나인 캠버웰 예술대학(CCA)을 졸업했다. 유럽과 남미, 미국에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고, 2019년에는 박물관 소장품과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 박물관의 기획전 ‘영감: 상징적 작품들’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보시치는 “나는 유럽의 모든 시대 예술가가 현대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들을 나만의 서커스에 초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47년 역사를 지닌 선화랑이 2007년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의 개인전 이후 17년 만에 개최하는 해외 작가 전시이기도 하다. 선화랑은 일찍이 1988년부터 10여 차례 해외 작가 전시를 열었지만, 창립자인 고(故) 김창실 대표가 지난 2011년 별세한 뒤로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해왔다. 김 전 대표의 며느리인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앞으로는 해외 작가들과의 협업을 포함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시를 기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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