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모든 단점 상쇄하는 故이선균의 열연
아이즈 ize 이경호 기자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봐온 전형적인 설정, 클리셰들이 넘쳐나는 익숙한 전개에 식상함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들의 눈길은 스크린에서 '탈출'하지 않는다. 우리 곁을 떠난 고(故) 이선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이 이를 막아선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한 이유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 감독 김태곤)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생존 스릴러다. 오는 12일 개봉.
'탈출'은 각자의 목적을 갖고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상 악화로 인한 짙은 안개 속에서 무지성 난폭운전을 펼친 한 사람으로 인해 연쇄 추돌 사고가 벌어지고, 하필 그 시간에 그 공항대교를 건너던 사람들이 엄청난 위기에 빠져든다.
이 상황에서 딸 경민(김수안)의 유학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도 사고를 맞닥뜨리게 된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사고로 인해 풀려나게 된다. 실험견들을 이송 중이던 군인들과 책임연구원 양 박사(김희원)는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공항대교 위에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생존자들은 실험견들의 타깃이 되어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정원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렉카 기사 조박(주지훈), 양 박사 등과 힘을 합쳐 사투를 벌인다.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이 펼쳐진다.
'탈출'은 극적 긴장감과 화려한 볼거리가 넘치는 재난물이다. 물론, 극 전개는 기존 재난, 생존 스릴러 영화에서 많이 봐온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장르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야기의 시작에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극을 이끌어 갈 주요 인물들이 가진 각자의 사연들도 전형적으로 흘러간다. 그 탓에 감정이입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공감까지 하기엔 무리가 있다. 주요 캐릭터들이 다소 작위적이고 비호감스러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
이런 가운데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 덕분. 먼저, 고 이선균을 필두로 주지훈, 김희원, 김수안, 문성근, 예수정, 박주현, 박희본 등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신구 배우들의 앙상블이 긴장감을 불어넣고, 몰입도를 높인다.
고 이선균은 '탈출'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으로 자리매김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는 혼란 속에서도 평정심 잃지 않으려 하는 안보실 행정관의 사명감과 딸을 위기에서 지키려 하는 강렬한 부성애를 선굵게 그려내며 관객들을 재난의 현장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한 인물이 품은 두 가지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이선균의 드라마틱한 열연은 관객들을 주인공의 탈출 여정에 동참시킨다.
주지훈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영화 속에서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준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촌스러운 염색한 장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조디!"를 외치며 반려견 찾는 주지훈의 코믹한 변신은 큰 웃음을 선사한다. 긴장감을 완화해주는 주는 주지훈 특유의 능글맞은 매력은 '탈출'의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여기에 김희원의 선과 악을 넘나드는 얄미운 감초연기, 애틋한 케미를 펼친 문성근과 예수정의 뭉클한 열연, 김태우의 악역 연기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국내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하고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돼 만들어진 볼거리는 기대를 충족시킨다. 산 넘어 산,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쇄 재난을 형상화한 CG 기술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자랑하며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100중 연쇄 추돌 사고를 시작으로 헬기 추락, 탱크로리 폭발, 다리 붕괴 위기 장면은 긴장감을 극대치로 끌어올리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게 CG로 구현된 군사용 실험견의 폭주는 마치 실사를 보는 듯한 사실감을 전달하며 극도의 공포감을 선사한다.
'탈출'은 고 이선균의 유작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이다. 나름의 재미도 있지만, 분명히 완성도 면에선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은 상업 영화로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다. 96분이란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극적 재미와 장르적 쾌감이 살아있는 팝콘무비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한 오락물만은 아니다. 메시지도 분명히 있다. '탈출'의 김태곤 감독은 영화 개봉 전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일상적인 공간, 공항에 갈 때 항상 지나던 곳이 어떤 요소로 인해서 변질되고 위협감으로 다가왔을 때, 관객들에게 얼마나 더 많은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걸로 출발을 했다"라면서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 관객들은 공감하고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했다"라고. 김 감독의 말처럼 캐릭터에 대한 공감, 상황에 대한 재미는 있다.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질 수도'라는 상상을 하는 관객들이 있다면, '탈출'을 선택하는 것도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하는 재미를 선사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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