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성악서 출발해 뮤지컬로도 우뚝…“누구도 안 간 길 가고 싶어”
“언제 음악을 시작했냐?”고 물으니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라고 답했다. 농담만은 아니다. “어머니가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셨어요. 클래식과 성악을 즐겨들으셨죠. 집에 있으면 늘 전축이나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왔어요. 자연스럽게 어린이합창단에도 들어갔고요.” 지난 4일 서울 중구 신당동 연습실에서 만난 카이(본명 정기열)가 말했다.
성악가가 되고 싶어 서울예고에 갔고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제가 노래로 성적이 괜찮았어요. 조기교육의 효과였나 봐요(웃음).” 하지만 성악가의 길은 쉽지 않았다. 노래에, 삶에 지쳐갈 즈음 목에 문제가 생겼다. 노래를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시작했다. “3년간 노래를 전혀 안 했어요. 앞으로도 노래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죠.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 방송사 아나운서·연기자 공채 시험도 봤어요.”
졸업은 해야 했다. 애초 테너였으나 바리톤으로 음역대를 낮추고 학업을 마쳤다. 그즈음 그를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뮤지컬이었다. “공익근무요원 시절 뮤지컬을 접하고 푹 빠졌어요.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뮤지컬 보는 데 다 썼죠.” 2007년 ‘사랑은 비를 타고’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섰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그냥 하라고 했어요. 열악했죠. 뮤지컬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가정 형편상 일찌감치 유학을 포기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노래에 전력해보자 마음먹고 온갖 콩쿠르에 다 나갔지만, 죄다 떨어졌어요. 그러다 석사 졸업 직전 동아음악콩쿠르에 기적적으로 입상했어요. 이를 끝으로 전문 성악가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기로 했어요. 당시만 해도 성악 하다 뮤지컬이나 팝페라로 가는 사례가 거의 없어서 주변에선 만류했지만요.”
크로스오버 가수로 데뷔해 활동하다 2011년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참여하게 됐다. “그때 많은 걸 배웠기에 제 진짜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듬해 ‘두 도시 이야기’로 대극장 뮤지컬에 진출해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팬텀’ ‘벤허’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 ‘레미제라블’ 등 굵직한 작품으로 많은 관객들과 만났다.
카이는 지금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8월25일까지)에서 열연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합류 이후 세 시즌 연속 출연이다. 1막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를 돕는 앙리 뒤프레를, 2막에서는 뒤프레의 주검으로 만든 괴물을 연기한다. 생김새는 같아도 캐릭터가 다르기에 1인 2역이다. 하지만 그는 “1인 2역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야누스 같은 인간의 상반된 면을 표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그런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뒤프레를 연기할 땐 괴물의 순수함과 폭력적인 면을, 괴물을 연기할 땐 뒤프레의 정의감과 이성적인 면을 한켠에 품고 연기해요. 그래야 인물이 더 깊어지고 입체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연기에도 관심이 많다. “책으로 배워 부족한 면이 많다”면서도 “연기 선생님 조언을 바탕으로 삼되 무대에서 스스로 깨우치는 게 중요하다”고 나름의 연기 지론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배우 신구 등이 출연한 2인극 ‘라스트 세션’으로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요즘 뮤지컬 배우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뮤지컬 배우가 꿈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성악 음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연 독창회 ‘카이 인투 더 월드’에서는 헨델의 아리아, 슈베르트 가곡부터 클래식과 영화음악을 넘나든 코른골트의 아리아를 거쳐 뮤지컬 넘버까지 보컬 음악의 역사를 아우르는 무대를 선보였다.
“배우이자 팝과 재즈를 아우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를 보고 우리는 장르를 따지기보다 그냥 ‘시나트라’라고 불러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 스타일로 풀어내는 것, ‘이것이 카이다’라는 생각으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제 원대한 꿈이자 목표입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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