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민원사주' 의혹 타임라인… 가족 민원 정말 몰랐나
[해설] 권익위,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 법률 위반 판단 회피
아들, 동생, 조카, 처제부터 전 직장 동료까지 '민원 타임라인'
가족 민원 인지 후 심의했는지가 핵심… 류희림 '몰랐다' 해명
동생 민원 사실 회의 언급 등 기록 있는데 해명 믿을 수 있나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이 터진 지 약 7개월이 지났지만 류 위원장이 가족 등의 심의 민원을 제기한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가 7개월째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류 위원장의 진술이 참고인들과 일치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단을 회피했다.
류 위원장은 정말 몰랐을까. 류희림 위원장의 사적 이해관계자들이 심의 민원을 넣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이다. 2023년 9월4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에서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과 관련해 “(뉴스타파를) 폐간시켜야 한다” 등의 강경 발언을 내뱉자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그것이 바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라며 “방심위 등에서 모니터하고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약 한 시간쯤 뒤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한 KBS, MBC, JTBC, YTN 등에 심의 민원이 쏟아진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지난해 9월4일부터 9월18일까지 관련 민원이 270여 건이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최소 127건이 류희림 위원장 가족과 지인, 혹은 관련 단체 관계자가 낸 민원이었다.
미디어오늘이 취재한 민원인 추정 현황에 따르면 류희림 위원장 아들, 동생, 조카, 처제 등 가족·가족 주변인·친인척 등 10명이 각각 1건에서 4건의 민원을 넣었고 류희림 위원장이 몸 담았던 경주엑스포 직원, 미디어연대 임원, KBS 입사 동기 등까지 합치면 민원을 넣은 위원장 이해관계자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한 다음날(2023년 9월5일) 국민의힘 추천 허연회 방심위원이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뉴스타파와 같은 건은 긴급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러 회의를 거쳐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한 KBS, MBC, JTBC, YTN에 법정제재 최고 수위 과징금이 부과됐고(2023년 11월13일) 류희림 위원장은 관련한 심의에 위원(장)으로서 모두 참여했다.
2023년 9월14일 동생 민원 사실 언급된 내부 보고 문건 작성
방심위 방송소위가 뉴스타파 인용 방송사들에 법정제재를 전제로 한 제작진 의견진술을 의결한 지(2023년 9월12일) 이틀 뒤(2023년 9월14일) 방심위 종편팀에선 류 위원장 동생 류모씨가 JTBC '뉴스룸'(뉴스타파 인용)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 문건이 만들어진다.
류 위원장이 해당 보고를 받았으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가 명확해진다. 동생의 민원 제기 사실을 알았는데도 2023년 9월25일, 2023년 11월13일 등 JTBC를 포함한 방송사들의 심의 때 회피 않고 의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류희림 위원장은 뉴스타파 인용에 대해 줄곧 최고 수위 '과징금'을 주장했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3년 9월 보고 문건이 만들어질 당시 종편팀장은 현 국제협력단장(장경식)인데 장경식 단장은 지난달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민원인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14일 당시의 직원들의 카카오톡을 공개하며 “'위원장실에 (팀장이) 보고 갔다 왔더니 위원장이 잘 찾았다고 극찬하더라'라는 내용이 있다”고 물었지만 장 단장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보고 문건이 만들어진 당일 위원장실이 위치한 19층 출입기록도 찍혀 있었지만 장 단장은 “바빠서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보고 문건에 언급된 류희림 위원장 동생 류모씨는 2023년 9월18일 자신이 낸 민원을 모두 취소했다. 보고 문건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가족들은 민원을 취소하지 않았다. 류희림 위원장이 내부 보고를 받고 동생에 민원을 취소하라고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지만 류모씨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적절한 것 같아 취소했다고 밝혔다.
'민원사주' 의혹을 보도했던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는 지난 2일 국회에 출석해 “(류희림 동생과) 다시 통화를 했다. 첫 보도(지난해 12월) 때는 형(류희림)의 후배가 형을 도와주자는 취지로 민원을 부탁했다고 하셨는데 엊그제는 말을 아예 바꿔 민원을 본인이 기획했다고 주장하시는 상황”이라며 “그렇다면 어떤 내용의 보도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물어도 사실상 대답을 못 하셨다”고 말했다.
2023년 9월27일 방심위 직원 “위원장님 왜 회피 않으십니까”
내부 보고 문건에 이어 2023년 9월27일엔 한 방심위 직원이 사내 게시판에 이해관계자들의 민원이 제기됐는데도 왜 심의를 회피하지 않냐고 따지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린다. 해당 게시물엔 위원장 비서실 조회기록이 찍혀 있었고 2023년 9월28일 비서실장이 해당 직원에 '인사위원회 개최도 고려하고 있고 글을 내리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또한 류 위원장이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비서실이 위원장도 모르게 일하나'라고 말했다.
회의 석상에서 사내 게시물이 언급된 공식적인 기록도 있다. 경향신문은 2023년 10월10일 <대통령실 '가짜뉴스 엄포' 직후 김만배 녹취 인용 보도 심의 신청 폭증···'국민의힘' 15건 신청> 기사에서 해당 직원의 사내 게시판 게시물을 보도했는데, 이후 방심위 방송소위(2023년 10월12일)에서 김유진 방심위원이 “언론보도를 통해 위원장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이 들어왔다는 직원 글이 공개됐는데도 위원장이 이 긴급심의 안건을 방송소위 위원장으로 주재하고 계신다”고 지적했다.
당시 회의에서 류희림 위원장은 “저와 사적인 뭐가 있다고 한 그 내용은 자세히 보시면 알지만 확정적인 게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데 아시다시피 누가 민원을 신청했다는 건 대외비”라며 “그 직원이 그런 글을 올린 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해당 방송소위 회의를 놓고 “저 당시에 저와 관련된 저런 수많은 내용이 도는 걸 제가 종합적으로 듣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이 “회의 때 저렇게 발언하시고 몰랐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물었지만 류 위원장은 “비슷한 글들이 많은 얘기가 있어서 종합적으로 들었다”고 답을 회피했다.
결국 권익위는 지난 8일 '민원사주'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들과 류 위원장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류희림 위원장을 중심에 놓고 가족, 지인부터 전 직장 동료까지 수십명이 일제히 비슷한 시간대에 유사한 형식과 문체로 민원을 넣었는데 류희림 위원장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 낸 것이다. 권익위는 강제 조사 권한이 없는 방심위로 사건을 넘겨 사실상 '사건 종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는 지난 2일 국회에서 “(류 위원장의) 청부민원(민원사주) 의혹은 의혹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며 “류희림 위원장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책임 지고 사퇴하거나 대통령실이 경질(해촉)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방심위 안팎에선 7월말 임기가 종료되는 류희림 위원장의 방심위원장 연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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