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기흥 회장 '국정 농단' 왜 언급했나?
권종오 기자 2024. 7. 9. 13:48
▲ 지난 4일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현수막 시위하는 체육단체 관계자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두 차례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이른바 '국정 농단 세력'을 언급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감독 기관인 문체부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 그 파장이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0월 유인촌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여러 사안을 놓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20일 유인촌 장관이 대한배구협회·여자배구 국가대표 은퇴선수 간담회에서 "대한체육회 중심의 체육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종목 단체와 지역 체육회에 예산을 직접 지원할 뜻을 내비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습니다. 유 장관의 발언은 현재 대한체육회가 갖고 있는 '예산 배분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산 배분권을 뺏길 경우 대한체육회는 그야말로 '속빈 강정' 신세로 전락하며 자칫 존폐 위기까지 몰리게 됩니다.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급소를 찔린 이기흥 회장은 물론 대한체육회 노조, 경기단체연합회까지 나서 유인촌 장관을 거세게 성토했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유인촌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지 6일 만인 지난달 26일 충청북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2016년 국정농단 당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단체를 억압하던 방식을 쓰고 있다. 각 종목 단체를 문체부가 직접 지원하는 건 국민체육진흥법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유인촌 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7월 2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8년 동안 이기흥 회장이 마음대로 했지만 경기력은 계속 나빠졌다.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라면 4천2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받으면 안 된다. 국회에서 들을 만한 이야기(국정농단, 블랙리스트)를 체육인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이기흥 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기흥 회장은 이틀 뒤인 7월 4일 대한체육회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문체부의 '아픈 손가락'을 다시 건드렸습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대법원은 어떤 일을 관철하기 위해 지속해 끊임없이 압박하는 것을 직권남용으로 판시했다"며 "국정농단 세력이 부활했다고 생각한다. 문화 체육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람들을 재조사해야 하며 파리 올림픽 후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문체부가 체육회의 급소인 '예산 배분권' 박탈 의사를 먼저 밝힌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응수로 문체부가 가장 금기시하는 '국정 농단 세력'을 언급하며 멍군을 부른 것입니다.
지난 2016년 말과 2017년 초에 걸쳐 문체부는 사상 최악의 한 해를 겪었습니다. 블랙리스트와 국정 농단 사태에 휘말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2명의 장관과 2명의 차관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특히 당시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이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의 사실상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치욕적인 사실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줬습니다. 블랙리스트, 국정 농단은 문체부에게 있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로 남았습니다.
그럼 이기흥 회장이 두 차례나 말한 문체부의 국정 농단 세력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회장이 구체적으로 특정 인사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한체육회 사정에 정통한 국내 체육계의 한 인사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대한체육회 수석 부회장을 지내던 2015년과 16년, 김종 차관과 여러 사안을 놓고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이기흥 씨가 각종 탄압에도 거세게 저항하자 체육회의 예산 배분권을 빼앗아 각 단체에 직접 지급했다. 이때 김종 차관 부하였던 문체부 직원 A와 B가 대표적으로 이기흥 씨와 대한체육회를 사사건건 괴롭혔다. 둘 다 이른바 '전투력'이 뛰어난 데다 조직과 상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 그야말로 김종 차관의 수족 노릇을 했다. 당연히 대한체육회 사람들은 이 2명에 대해 치를 떨었다. A가 주로 당시 김정행 회장과 이기흥 수석 부회장과 싸웠다면 B는 체육 단체 통합 등 현안들을 둘러싸고 대한체육회 실무 간부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그런데 오랫동안 스포츠 업무에서 손을 놓았던 B가 몇 달 전에 거의 8년 만에 다시 체육 업무를 맡는 자리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대한체육회, 문체부 두 기관의 갈등이 첨예한 시점에서 강성으로 평가되는 인물을 복귀시킨 것이다. 이기흥 회장이나 체육회로서는 저의가 있는 인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쉽게 말해 유인촌 장관이 사실상 대한체육회와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B 씨가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단지 김종 차관의 지시에 따라 부하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인지 아니면 국정 농단에 실제로 관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회장이 언급하는 국정 농단 세력 인사들 가운데 B가 포함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장관은 "국회에서 들을 만한 이야기(국정농단, 블랙리스트)를 체육인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지만 이기흥 회장은 파리 올림픽이 끝난 뒤 오는 10월에 있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 농단 세력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신의 체육회장 3연임을 사실상 원하고 있지 않는 문체부를 상대로 '끝장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데다 현재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도 문체부를 매섭게 공격할 '호재'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선임하자 국내 문화 단체들은 일제히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인물"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이래저래 오는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8년 만에 문체부의 국정 농단 세력 부활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격랑이 일 전망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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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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