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위장 타고 뼛속까지 짜르르…‘K-증류소주’의 매력

관리자 2024. 7. 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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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말과 조선초 격변기를 살았던 이색(李穡, 1328∼1396년)의 '목은시고(牧隱詩稿)'에 나온다.

이색이 칭송한 이 술은 바로 '증류소주'다.

이것이 마치 이슬 같다고 여겨 사람들은 증류소주를 '노주(露酒)'라고도 불렀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증류소주는 서양에서 개발한 연속식 증류기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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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증류소주
고려말 이색의 시 제목에 ‘아랄길’로 표현
수증기 맺힌 모습 이슬같아 ‘노주’로 불려
각국 주당들 입맛 사로잡을 특색 갖춰야
밑술을 넣은 소줏고리를 가열해 증류소주를 얻는다. 농민신문 DB

“반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 글은 고려말과 조선초 격변기를 살았던 이색(李穡, 1328∼1396년)의 ‘목은시고(牧隱詩稿)’에 나온다. 이색은 이 한시를 55세였던 1382년(우왕 8년)에 썼다. 시의 제목은 ‘서린(西隣)의 조판사(趙判事)가 아랄길(阿剌吉·소주의 옛말)을 가지고 왔다. 그 이름을 천길(天吉)이라고 했다’이다. 서린은 고려 수도 개성의 태평관(太平館) 서쪽에 있던 양온동(良醞洞)을 가리킨다. 조판사는 고려말 문신이었던 조운흘(趙云仡, 1332∼1404년)이다.

주당이라면 빈속에 술 한잔 털어넣었을 때의 느낌, 곧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쫄쫄 내려가며 위장에 이르는 기분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색은 그 느낌을 ‘뼛속까지 퍼진다’고 적었다. 더욱이 술맛에 정통했던 중국의 도연명(陶淵明, 365∼427년)과 술에 취하기를 거부했던 굴원(屈原, BC 340∼BC 278년)도 이 술을 마셨다면 반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굴원과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에는 이 술이 없었다는 말인가? 옳은 말이다. 이색이 칭송한 이 술은 바로 ‘증류소주’다. 이색이 살았던 시대에야 비로소 지구상에 나타났다.

한때 ‘국민의 술’로 알려진 시판 소주는 정확하게 말하면 ‘희석식 소주’다. 그래서 나는 증류한 소주를 증류소주라고 부른다. 증류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잘 익은 막걸리가 있어야 한다. 막걸리가 담긴 술 항아리에 싸리나 대오리로 엮어 만든 둥글고 긴 용수를 박는다. 그러면 용수의 위쪽에 맑은 술인 청주(淸酒)가 떠오른다. 이것을 조심스럽게 떠내서 밑술로 삼는다. 이 밑술을 증류하려면 재래식 증류기인 소줏고리가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소줏고리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지역마다 형태가 약간씩 달랐다. 중남부에서 주로 사용했던 소줏고리는 대부분 눈사람 모양처럼 가운데가 잘록하다. 이 잘록한 부분에 주둥이가 달려 있다. 소줏고리를 청주가 담긴 솥 위에 올려놓고 중간 정도로 불을 때서 가열하면 청주가 점차 수증기로 변한다. 소줏고리 윗부분에 차가운 물을 채운 자배기를 올려놓으면 위로 올라온 수증기가 물로 변해 주둥이를 타고 똑똑 떨어진다. 이것이 마치 이슬 같다고 여겨 사람들은 증류소주를 ‘노주(露酒)’라고도 불렀다.

이색이 지칭했던 술 이름 ‘아랄길’은 본디 땀을 뜻하는 아랍어 ‘아라크(arrack)’의 한자 표기다. 무더운 날씨에 자신도 모르게 피부에 땀이 맺히듯이 증류기에 술이 땀방울처럼 맺힌다고 해 세계 여러 곳 사람이 증류주를 ‘아라크’라고 불렀다. 백주(白酒·고량주, 중국)·아르히(몽골)·보드카(러시아)·브랜디(프랑스)·위스키(스코틀랜드) 등은 13세기경 쉽게 부패하는 밑술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아랍의 연금술을 도입해 발명한 증류주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증류소주는 서양에서 개발한 연속식 증류기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정부는 멥쌀 부족을 핑계 삼아 고구마나 당밀 심지어 카사바 전분으로 94도짜리 주정을 만들도록 법률로 강제하고, 이 주정을 소주 회사에 공급하면서 주세를 효율적으로 거둬들였다. 주정에 물을 섞은 술이 바로 ‘희석식 소주’다. 2000년대 이후 국내산 멥쌀이 남아돌자 민속주 혹은 농민주라는 이름으로 멥쌀 증류소주가 세상에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증류주와 비교하면 한국 증류소주는 맛에 특색이 없어 주당들의 입맛을 유혹하지 못한다. 국내산 멥쌀과 밀 그리고 우리 땅의 흙으로 만든 소줏고리로 빚은 증류소주는 ‘한국 농업’이 나아갈 길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빚은 한국 증류소주가 다른 나라의 증류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교수·음식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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