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멀쩡히 살던 숲 없애고 ‘곤충 호텔’ 만드는 위선

김양진 기자 2024. 7. 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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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전상서][서울 은평 팥배·아카시아②·끝]
국내 유일한 대규모 팥배나무 군락지 등 숲을 훼손하고 그 흔한 편백 인공림과 꽃잔디밭을 만들고 데크길을 까는 것이 정말 행정이 해야할 일일까?
은평구청이 봉산에 설치한 끈끈이 트랩에 깃털이 뜯긴 박새.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서울 은평 팥배·아카시아①]‘‘편백 밭’ 억지 행정 깨져버린 생태 균형’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759.html 에서 이어집니다.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 봉산 산행길엔 러브버그가 입과 눈에 들어갈 정도로 많았다. 산등성이 탐방로를 따라 지상 1~2m 간격으로 끈끈이 트랩들이 설치돼 있었다. 2020년 대벌레 대발생 이후 3년간 봉산에는 9200ℓ(산림청 정보공개 청구 결과, 은평구청 방제 현황은 ‘자료 없음’ 비공개)의 살충제가 지상·드론 방제 형식으로 뿌려졌다. 모두 ‘비선택 살충제’, 즉 맞으면 모든 곤충이 죽는 살충제였다. 세상에 대벌레만 골라서 죽이고, 러브버그만 골라서 죽이는 살충제는 없다. 2022년엔 러브버그가 대발생하자 살충제 살포가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022년 은평구청은 대안으로 끈끈이 트랩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 비선택적이다. 다른 많은 곤충들과 작은 새들이 무차별적으로 이 덫에 걸려들고 있다.

은평구는 “관련성이 발견된 바 없다”는 이유로 “편백 숲 조성과 대벌레·러브버그 대발생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련의 곤충 대발생과 방제 실패, 또 다른 곤충 대발생이라는 악순환의 원인에 대해 편백 인공림 조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의심하는 전문가도 많다. 홍석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다, 외래유입이다, 천적이 없다 등등 러브버그 대발생에 대한 다양한 이유가 나오고 있고 정확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인데 왜 은평에만 대발생했을까요? 생태계 균형이 깨진 곳이 은평구인 거죠.”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군데군데 흙이 드러나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그는 이어서 곤충 대발생에 대한 대응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렇게 지적했다. “생태계 균형이 깨진 건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공무원들 입장에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농약밖에 없어요. 민원이 들어오면 문제가 진짜 해결되게끔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공무원과 연구자의 역할인데, 쓴소리가 듣기 싫으니 ‘벌레가 많아? 그럼 농약 쳐!’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합니다. 끈끈이 트랩도 마찬가지예요.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천적이 나타나 스스로 해결을 합니다. 끈끈이 트랩은 균형을 계속 깨트리는 방식이죠. 특히 나무를 오르내리는 곤충들을 죽여서 애벌레를 먹이로 하는 딱따구리 등의 서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동규 고신대 석좌교수(보건환경학)는 이렇게 말했다.

“우포늪이나 DMZ같이 생태계가 두꺼운 곳은 이런 곤충 대발생이 일어나지 않아요. 생태계가 얇은 곳에서 살충제 등을 써서 포식자들이 대미지를 받을 때 대발생 현상이 일어나죠. 그냥 두면 천적이 많이 발생해 다시 균형을 찾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발생한 산에다가 인위적으로 농약이나 끈끈이 트랩을 처리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러브버그는 1~2주면 사라지는데, 그냥 기다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생태계는 사람이 자꾸 관여해서 깨지는 겁니다. 특히 농약을 뿌리면 저항성을 가진 인자들만 살아남아요. 요즘 ‘좀비 모기’가 화제가 된 이유죠.”

은평구청이 봉산에 설치한 끈끈이 트랩에 새 깃털이 붙어 있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시민 기만하는 그린워싱 ‘곤충호텔’

‘무분별한 농약 사용에 시달리는 곤충들의 대피소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편백 전망대 한쪽에는 ‘곤충 호텔’이 설치돼 있었다. 바로 옆에 끈끈이 트랩이 설치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진우 전문위원이 말했다.

“은평구청이 여기에 곤충 호텔을 만든 건 위선이고 가식이고 그린워싱이죠. 곤충을 학살·박멸한다고 온갖 방제를 했잖아요. 수년간 편백을 심겠다며 곤충들의 집인 숲을 파괴했어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끈끈이 트랩이 감겨 있었어요. 곤충들을 쉬게 해주는 호텔이 아니라 곤충을 죽이기 위해 속이는 트랩인 거죠.” 나영 대표도 말을 더했다. “이게 다 구민 세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구민들이 자기가 죽이는지도 모르는데, 나비와 무당벌레를 죽이고, 애벌레를 죽이는 데 일조하도록 하는 겁니다.”

중간중간 안내판에는 ‘산림 내 금지행위’가 적혀 있었다. ‘나무를 훼손하거나 말라 죽게 하는 행위’ ‘심한 소음과 악취 등 혐오감을 주는 행위’ 등이다. 나영 대표가 말했다. “정말 모순적이죠. 시민은 못하지만 구청은 나무를 훼손하거나 말라 죽게 할 수 있다는 거죠.”

팥배나무 군락지로 가는 길목에서 굉음이 들렸다. 숲 한가운데에 꽃잔디(지면패랭이) 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탐방로가 차단된 채 물을 주기 위한 급수 모터가 돌아갔다. 기름 냄새도 났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갔고, 노동자 10명가량이 이 밭을 돌봤다.

“한 달 전부터 쭉 보고 있는데, 거의 매일 물을 줍니다. 여기가 돌밭이거든요. 햇빛이 이렇게 강하니 꽃잔디가 말라버려서 매일 물을 줘야 한다고 해요. 기존에 있던 참나무, 아까시는 왜 벴을까요? 편백을 심으려다 토질이 안 맞아서 못 심었다고 현장 노동자들은 설명하는데 구청에선 제대로 설명을 안 합니다. 그래놓곤 여기에 포토존을 만든다고 하네요.”(나영 대표)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의 편백 인공림에 쌓여 있는 기존 숲의 나무들. 편백을 살리려고 둥치가 굵은 나무들도 모두 베어냈다. 그 뒤로 편백 ‘경작’을 위한 물탱크가 보인다. 김양진 기자

2018년 서울시의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 정밀 변화 관찰 연구’ 결과를 보면, 팥배나무 숲 보전을 위해 △샛길 통행 금지 △현명한 이용 방안 마련 △시민과 협력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실시 △보전지역 확대 지정 △불법 경작 금지 등을 제안했다. 이 연구의 주책임자인 이호영 한길숲연구소장의 지적이다. “팥배나무 숲을 보전지역으로 지정은 했는데, 그게 끝입니다. 같은 팥배나무 숲이라도 능선 넘어 고양시 쪽으로만 가면 보호받지 못해요. 이런 대규모 팥배나무 숲이 생태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적으로 아름답다는 걸 지속해서 알려야 ‘보존지역이 확대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겠죠. 숲 관광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 편백 숲은 많잖아요.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색다른 숲이 곁에 있는데 편백 숲을 또 만들고 있으니 안타깝죠.”

당시 제안은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것이 없다. 은평구청은 2021년부터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기존 탐방로 바로 옆에 데크길 공사(2026년까지 9.8㎞ 구간 대상)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훼손이 엄격하게 금지된 생태경관보전지역 일부에도 데크길을 깔고 팥배나무 등을 베어내기도 했다. “행정착오였다”는 게 은평구청 설명이다.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생태분과)인 민성환 대표는 “원상회복 조처를 하는 게 맞다. 데크길 공사도 장애인 이용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해도 기존 탐방로를 숲으로 복원해 숲을 보호해야 한다”며 “구청이 나서서 오히려 길을 더 만들고 있다. 7월 중순 생태분과 위원들과 봉산 현장을 답사할 예정이다. ‘늙은 아까시는 나쁜 나무’라는 논리로 기존 숲을 다 밀어버리고 조그만 묘목을 심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2024년 6월5일 ‘숲은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일까’라는 제목의 <서울신문> 기고 글에서 “나무를 베는 일이 가혹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에게 이득이 되고 은평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구청장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숲과 데크길이 정말 가치를 높여줄까.

봉산 남쪽 숭실중·고교 뒤편의 편백 인공림. 2014년 조성됐지만 대부분 죽고 지줏대만 남아 있다. 편백 자생지는 일본 남부에서도 습윤한 계곡 지역이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돈·시간·사람 퍼부으며 자연 훼손

하산 길에 숭실중·고교 뒤쪽에 2014년에 조성했다는 편백 인공림을 살펴봤다. 남은 편백이 한 20%는 될까. 남쪽 비탈이라 볕이 뜨겁고 메마른 탓에 상당수가 고사했다. 자세히 봐야 보일 정도로 이미 참나무류와 아까시가 지주목에 의지해 있는 편백보다 키가 커져 있었다.

“2~3년 그냥 두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텐데, 구청에서 주기적으로 와서 편백 외 다른 나무들은 솎아버려요. 잘못을 인정하고 복원하면 되는데, 자기 사업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려고 돈·시간·사람을 퍼붓는 거죠.”(나영 대표)

미국 동부가 원산지인 아까시(로비니아 속)는 130년 전 도입돼 황폐해진 우리 숲을 푸르게 하고자 1960~1980년대 전국적으로 식재됐다. 그러면서도 외래종이라고 배척받았다. 10여 년 전부터는 흔하게 불리던 ‘아카시아’라는 이름을 부르는 일도 드물어졌다. 남아프리카·호주 등에 주로 사는 ‘진짜 아카시아’(아카시아 속)와는 사는 기후대가 다르고, 학술적으로 부를 때 헷갈린다는 학자들의 정정 요구 때문이었다. 사실 이 둘은 가시가 달렸다는 점만 같다. ‘진짜 아카시아’는 잎과 꽃이 아까시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자귀나무와 닮았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의 동요)라는 노랫말로 그 이름을 지킨다.

이날 일행들 사이에서 ‘아카시아 이름 찾아주기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카시아가 아까시가 되더니 그 나무가 주는 옛 정취와 추억들, 충분한 고마움과 낭만까지 거세돼버린 느낌이 들어요. 되도록 아카시아라고 부르고 싶어요.” 최진우 위원이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온통 회색인 도시에 새들이 우짖습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가 서 있습니다. 사방으로 잎과 가지를 뻗어 세상을 숨 쉴 곳으로 지켜줍니다. 곤충, 새, 사람이 모여 쉽니다. 이야기가 오갑니다. ‘나무 전상서’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에 지름 70㎝ 아름드리 신갈나무(참나무)가 잘려 있다. 이 나무는 밑동 뒤쪽으로 새 가지와 잎을 세차게 뻗었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봉산의 은사시나무 둥지에서 밖을 내다보는 어린 오색딱다구리.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의 팥배나무 군락지의 수관(잎과 가지). 왼쪽이 팥배나무, 오른쪽이 신갈나무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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