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 밭’ 억지 행정에 깨져버린 생태 균형

김양진 기자 2024. 7. 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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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전상서]은평구청, 10∼56살 참나무·팥배나무 베어내고 인공숲 조성… 끈끈이·살충제에 무차별적으로 걸려드는 작은 새와 곤충들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군데군데 흙이 드러나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의 편백 인공림에 쌓여 있는 기존 숲의 나무들. 편백을 살리려고 둥치가 굵은 나무들도 모두 베어냈다. 그 뒤로 편백 ‘경작’을 위한 물탱크가 보인다. 김양진 기자

대벌레(2020년), 러브버그(2022년) 등 곤충 대발생 발원지로 알려지면서 뜻밖의 유명세를 치른, 도심 속 낮은 산이 있다. 해발고도 208m인 봉산이다. 봉산은 북한산에서 시작해 이말산·앵봉산으로부터 이어져, 남쪽으로 매봉산(상암동)과 한강으로 내달리는 서울의 주요 산줄기다. 그 산줄기가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를 남북으로 가르는 자연 경계가 된다. 봉산은 오랫동안 골짜기골짜기 사람들을 품어줬다. 그렇게 늘어가는 ‘사람 서식지’에 샌드위치처럼 눌리고 눌려, 홀쭉하게 남북으로 긴(약 5㎞) 국자 모양 뼈대만 남아 있다. 그래도 아직 꽤 깊은 숲이다.팥배나무 대규모 군락지(7.3㏊)도 ‘국자의 목’ 부분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도권에서 가장 크다. 그 생태적 가치 때문에 2006년 6월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뼈대만 남은 북한산 주요 산줄기 ‘봉산’

그 맞닿은 고개 너머엔 2014년부터 10년째 은평구청이 물·비료를 주면서 경작하는 편백 인공림 ‘밭’이 있다. 기존 숲을 없애고 편백을 심은 곳(6.5㏊)과 전망대 등 편의시설을 포함한 ‘편백숲 사업’ 면적은 15㏊다. 봉산 전체(151㏊)의 10%에 이른다. 똑같은 팥배나무라도 보전지역 밖을 나와 이곳에 오면 가차 없이 베어진다. 이 변덕스러운 ‘선 긋기’를 고발해온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봉산생태조사단원),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과 함께 2024년 6월19일 산새마을(신사동) 쪽 입구를 거쳐 봉산에 올랐다. 곤충 대발생이라는 생태계 이상 신호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파랑새네요. 여름을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여름철새예요. 제가 그저께 둥지를 확인했어요. 까치가 지어 쓰던 빈 둥지더라고요.” 나영 대표가 숲 밖으로 나오는 파랑새 한 마리를 가리켰다. 산 입구에 잠시 머무는 동안 암컷 딱새가 산새마을 표지판 위에 앉아 까딱까딱 꼬리를 흔들었다. 숲 깊은 곳에서 뻐꾸기가 울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산은 많은 생명이 먹고 자는 왁자지껄 삶터다. 발길을 멈춰 고개를 들고 귀를 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2023년 2~3월 은평구청이 편백을 심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했다. 이렇게 기존 숲을 파괴한 일을 계기로 봉산생태조사단이 꾸려졌다. 단원들은 매주 봉산에 올랐다. 2024년 4월까지 1년2개월간 새 71종의 사진·영상·소리를 기록했다. 아물쇠딱따구리·쇠딱따구리·오색딱따구리·큰오색딱따구리·청딱따구리 등 건강한 숲에만 산다는 딱따구리류부터 소쩍새·솔부엉이·황조롱이·새매·새호리기 같은 멸종위기종들까지 확인했다.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새의 종 다양성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곤충과 각종 미생물, 식물들을 비롯한 피식자들의 종 다양성 등 전체 생태계의 건강성을.

폭탄 맞은 듯 휑뎅그렁한 ‘편백숲’

산 입구에서부터 갈참·신갈·상수리·굴참 등 참나무류부터 팥배나무, 아까시(아카시아) 등 넓은 잎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을 만들었다. 이날 바깥 기온이 35℃까지 올랐다. 그런데 그늘이 사라진 탁 트인 공간이 등장했다. 2023년 3월 ‘조림’했다는 산 중턱 ‘편백숲’이다. 이곳은 폭탄을 맞은 듯 휑뎅그렁했다. ‘조림’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안엔 ‘숲 파괴’의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 줄지어 심은 키 작은 편백 묘목들 사이로 참나무류, 벚나무, 아까시 등의 남은 그루터기들이 확인됐다. 현장에서 본 몇 그루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5~30살 정도로 다양했다. 지름 70㎝가 넘는 신갈나무 그루터기가 세차게 잔가지를 뻗고 있었다. 큰금계국개망초·미국자리공 같은 훼손되고 교란된 생태계에 들어서는 풀들이 나무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가 (은평구에서) 서울 최초라고 자화자찬했던 편백나무 치유의 숲입니다. 환하고 뜨겁죠? 치유는커녕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최진우 전문위원의 말이다. 매주 봉산 모니터링을 하는 나영 대표는 “지난주에도 구청에서 제초했는데, 또 이렇게 자랐다”며 “편백을 뺀 다른 나무의 맹아나 어린나무들은 다 베어버린다. 편백을 살리려고 다른 풀과 나무들을 계속 죽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이 건너편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25m 키의 참나무류, 밤나무, 아까시 등이 빽빽했다. “편백을 심기 전 숲을 상상해봤으면 해요. 은평구청은 ‘쓸모없는 아까시’라서 벤다고 하는데, 이 산에 40~50년 전 심었던 콩과 식물인 아까시가 그간 질소가 풍부한 비옥한 땅을 만들었잖아요. 그 힘으로 참나무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아까시가 고사하면서 참나무류와 팥배나무가 자라는 자연림으로 회복해가는 모습이죠.”

선 넘으면 벌목 ‘변덕스러운’ 생태 보전 

애초 ‘관광지 조성을 목표’(사업계획)로 편백림을 조성했던 은평구청은 생태 파괴 논란이 뒤따르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30살 이상 아까시나무 ‘불량림’을 제거하고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과 미세먼지 저감 능력이 뛰어난 편백을 심었다”는 설명을 내놨다. 그런데 2023년 3월 은평구가 이 일대에서 벌채한 나무 306그루를 일일이 분석한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 쪽 조사 결과는 사뭇 다르다. 306그루 중에선 참나무류가 32.4%(99그루), 팥배나무가 26.1%(80그루)로 많았고, 아까시나무는 23.5%(72그루)에 불과했다. 봉산이 이미 인위적으로 심은 나무보다 자연이 키운 나무가 더 많은 천연림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게다가 ‘30살 이상만 제거했다’는 구청 설명과 달리 나무 수령도 10~56살로 다양했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를 가르는 봉산(초록색 경계). 그리고 망원산, 앵봉산, 백련산, 북한산(왼쪽부터) 등 주변 산들. 네이버지도 갈무리

편백이 탄소를 많이 흡수한다는 것도 틀린 주장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조사(2013년)를 보면, 10살 된 편백의 나무별 ‘탄소 순 흡수량’은 5.1t/㏊/년이다. 같은 연령의 상수리(11.72t/㏊/년), 신갈(9.0t/㏊/년) 등 참나무류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면 아까시는 정말 불량 나무일까. 탄소흡수량(30년생 기준 13.8/㏊/년)은 참나무 수준이다. 특히 전국에서 생산되는 벌꿀의 70%가 아까시꽃에 의존한다. 핵심 수분 매개 곤충인, 다양한 종류의 나비들이 나고 자라는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산림청 주도로 일부러 심는 나무다.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가 말했다.

“시청이고 구청이고 단체장이 뭔가를 하자고 하는데, 공무원들이 ‘안 된다’고 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냥 하죠. 반대 여론이 있으면 뚫고 나갈 만하면 밀어붙이죠. 여론이 안 좋으면 백지화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잖아요.”

이날 ‘편백숲’ 한쪽에 위장포로 쌓인 물탱크가 눈에 띄었다. 편백에 줄 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은평구청은 “중부지역 기후환경에 순화된 편백을 심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줘야 한다는 건 편백이 봉산에 살기에 적절한 나무가 아니라는 증거다. “처음에는 묘목들 관리하는 데만 물탱크가 있는 줄 알았는데, 2014년 심은 편백 쪽에도 물탱크가 있었어요. 은평구청에선 편백 활착률이 90% 이상이라고 하는데, 자생이 안 되는 나무를 가져다가 10년째 인공적으로 물을 주면서 예산을 낭비하는 거죠.” 나영 대표가 말했다.

“숲 파괴이자 탄소 배출을 위한 사업”

최근 봉산을 답사했던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편백림 조성사업을 “숲 파괴이자 탄소 배출을 위한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편백은 따뜻하고 습윤한 곳에서 자랍니다. 토양 양분·습도가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숲을 벌채해 황폐화한 곳에 물통을 가져다가 물을 줍니다. 이게 자연인가요? 재배죠. 조금 과장하면 우리나라에서 바나나나 커피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키울 수는 있죠. 그게 적지적수(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음)냐가 문제죠. 50살 된 거대한 참나무를 벤다는 건 그동안 흡수한 탄소를 날려버리는 거죠. 편백은 탄소 흡수량이 가장 적은 나무 중 하나니까요” 홍 교수의 지적이다.

자생지가 어딘지 알면 왜 서울 편백림 조성이 편백에도 좋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29년째 조경업체를 운영하는 박정기 노거수를찾는사람들 대표는 “서울에 안 갔다 온 사람이 서울 갔다 온 사람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편백은 일본 남부 지역의 계곡부, 그중에서도 토심이 깊고 유기물이 많고 토양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어려서는 물론 커서도 음지를 더 좋아합니다. 굳이 산에 편백을 키우려면 모두베기(개벌)보다는 기존 나무 그늘을 남겨둔 채 솎아베기(간벌)로 편백을 심는 게 맞겠죠. (봉산처럼) 모두베기를 하면 편백은 살기 어렵습니다. 은평구청에서 기후변화를 얘기했는데, 편백은 열과 추위에 모두 약합니다. 지금 기후는 겨울에도 수도권 지역은 전반적으로 따뜻하더라도 영하 10℃에 가까운 극한 추위가 최소 3일은 찾아오는데, 편백은 못 견딥니다. 중부지방에 편백을 심는 건 나무 생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맞지 않죠.”

“저기 편백 하나 죽었네요.” 발길을 옮기려는데 나영 대표가 길 한쪽의 키 3~4m가량 말라 죽은 편백 한 그루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2014~2018년 식재된 편백 상당수의 우듬지(꼭대기에 돋아난 가지)가 곧추서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대표적인 나무의 물 부족 증상이다.

은평구청이 봉산에 설치한 끈끈이 트랩에 깃털이 뜯긴 박새.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은평구청이 봉산에 설치한 끈끈이 트랩에 새 깃털이 붙어 있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봉산 남쪽 숭실중·고교 뒤편의 편백 인공림. 2014년 조성됐지만 대부분 죽고 지줏대만 남아 있다. 편백 자생지는 일본 남부에서도 습윤한 계곡 지역이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서울 은평 팥배·아카시아②]‘멀쩡이 살던 숲을 없애고 ‘곤충 호텔’를 만드는 위선’ 기사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760.html 에서 이어집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에 지름 70㎝ 아름드리 신갈나무(참나무)가 잘려 있다. 이 나무는 밑동 뒤쪽으로 새 가지와 잎을 세차게 뻗었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 인공림’. 2023년 2∼3월 조성됐다. 한창 숲이 우거져야 할 시기지만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김양진 기자

*온통 회색인 도시에 새들이 우짖습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가 서 있습니다. 사방으로 잎과 가지를 뻗어 세상을 숨 쉴 곳으로 지켜줍니다. 곤충, 새, 사람이 모여 쉽니다. 이야기가 오갑니다. ‘나무 전상서’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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