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듣고 보기 아까워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이민아 2024. 7. 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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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 파도와 맞선 이들의 손에 들린 건 노 한 짝 뿐.

험난한 여정일 것을 알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 떠났고,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내리쬐는 태양에 피부가 몇 꺼풀 벗겨져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를 저어서 인천 앞바다를 출발해서 독도까지 간다고 하면 그건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예임이 확실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독도를 사랑해주고 자긍심을 갖고 그리고 그 섬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우리의 정신적 모든 것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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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 파도와 맞선 이들의 손에 들린 건 노 한 짝 뿐.

험난한 여정일 것을 알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 떠났고,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내리쬐는 태양에 피부가 몇 꺼풀 벗겨져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삼 면의 바다를 무동력으로 74일간 탐험한 극한의 기록을 담은 사진전입니다.

최종열 탐험가는 2010년 세계 최초로 한반도 3면의 바다를 5명의 대원들과 무동력으로 탐험했다

이 무모한 탐험대를 이끈 대장, 최종열 탐험가를 초대한 건 충북 청주에서 둥지향 갤러리를 운영하는 최선종씨.

둘의 인연은 20년 전 최선종 씨가 충북대학교병원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시작됐습니다.

환자들이 시무룩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최선종 씨는 지역 작가들을 직접 섭외해 병원에 전시를 열고 있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사하라 사막 등을 누비는 탐험가의 사진은 병원을 떠날 수 없는 환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죠.


충북 제천에 살고 있는 최종열 씨는 한국 최초 북극점 성공, 세계최초 사하라사막 도보횡단, 실크로드 자전거 횡단 등을 한 탐험가다.

“환자들이 아우, 이런 데가 있느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일반인이 잘 볼 수 없는 사진이니까...”

환자들의 그 기뻐하는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최선종 씨는 퇴직 후 작은 갤러리를 차렸고, 올해로 개관 3주년을 맞은 갤러리에선 스물한 번째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최종열 탐험가와 최선종 관장이 전시가 열리는 둥지향 갤러리(충북 청주시 서원구) 앞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혼자 보고 듣기 아까워 최 탐험가 초대전을 열었다는 최선종 씨의 마음을 담아 사진 몇 점과 최 탐험가의 해설을 함께 싣습니다.

“최 탐험가의 사진들을 보며 청소년들의 꿈이 한 단계 높아지길 바라고 중년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재능에 마지막을 불사를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둥지향 갤러리 최선종 관장의 축하글

이건 재미난 사진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 코펠에 음식을 해먹고 이제 설거지를 해서 이제 씻는 과정, 또는 바닷물을 뜨는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이게 사실은 변기예요.
바다에서는 무조건 다 뜨는 것들을 써야 해요.그래서 이렇게 코펠에다 물을 반 정도 이렇게 담아가지고선 큰 볼일을 보고 버리고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씻어 놓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저녁이면 변신을 하죠. 여기에다 라면을 끓이고 여기에다가 찌개를 해서 먹는데,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 무게와의 싸움을 해야 되는 거예요.
탐험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가져가지 않고 그 군더더기를 버리는 대신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생존 장비를 싣고 갔을 때 우리는 더 안전해질 수 있다.

배를 만들 때였어요. 이 배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졌고, 사실은 스폰서가 되지 않아서 제가 집을 담보로 하고 제가 나이 들어서 타야 될 연금도 다 해약하고 이 배를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배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있잖아요. 미래가 두렵지 않았어요.

‘지금 당장 내가 이 5천년 역사 이래 최초로 노 저어서 바다를 가야 되겠구나.’ 죽어서 내 선조들을 만났을 때 너 뭐 하고 왔어? 물으면 “저는 산면의 바다를 다 넣어줘서 왔습니다.” (웃음)

장보고 장군은 서해에서 청해진을 호령했지만 산면의 바다를 돌지는 않았거든요. 우리 후예들이 이렇게 대단한 탐험 정신을 갖고 있는 후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걸 만들 때는 늘 힘들고 어렵고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내 마음, 내 영혼은 어느 때보다도 더 밝고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북이 37도 14분 38초, 동경 131도 51분 35초가 독도의 좌표입니다”

이 사진은 상당히 중요한 사진 중 하나입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소망하고 간절히 꿈꾸면 너가 원하는 그 꿈의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어’

독도의 좌표를 지워지지 않는 매직펜으로 가슴에 새긴 거예요. 그래서 우리 대원들 모두가 그렇게 독도를 가기를 염원했고, 열심히 노력했고...

제가 이걸 기획하게 된 계기는 뭐냐면 늘 탐험지는 에베레스트는 네팔, 중국 뭐 이렇게 국경을 넘어야 하잖아요. 사하라다 그러면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고요. 그때마다 저는 그랬어요. ‘대한민국에는 정말 탐험할 수 있는 소재는 없을까?’

근데 그 그때가 일본과 우리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 의해서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생길 때였어요. 그래서 노를 저어서 인천 앞바다를 출발해서 독도까지 간다고 하면 그건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예임이 확실한 거거든요.

독도라는 건 아무 말 없이 그냥 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바다를 지키고 있는 어떻게 보면 최전방과 같은 역할을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독도를 사랑해주고 자긍심을 갖고 그리고 그 섬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우리의 정신적 모든 것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충청 #충북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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