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좋은 검사’도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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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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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전시의 군대를 제외하곤 이 나라에서 가장 힘있는 집단입니다. 검사는 다른 어떤 집단과 견줘도 시민의 생명, 자유, 명성을 좌우할 더 큰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검사의 재량권은 엄청납니다. 검사는 시민들을 수사받게 할 수 있고, 성향에 따라 수사를 공개적으로 또는 암시만 주면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수사 대상자의 지인들을 조사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검사는 불기소 처분을 할 수도 있고, 재판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검사는 선고 형량을 제시할 권한도 있습니다. 이런 권한을 올바로 행사할 때 검사는 우리 사회에 가장 선한 영량력을 끼치는 집단의 하나이겠지만, 만약 악의나 비도덕적 동기로 행동한다면 가장 악한 집단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로버트 잭슨 ‘연방검사’
80년 전 과거에서 날아온 경고
검사가 가진 권력의 성격과 그에 내재된 위험성, 그리고 올바른 권한 행사의 원칙 등에 대해 근본적인 통찰을 명쾌하게 제시한 텍스트를 하나만 꼽자면, 로버트 잭슨(1892~1954) 전 미국 연방 법무부 장관의 ‘연방검사’(The Federal Prosecutor)가 아닐까 합니다.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뒤 1940년 4월1일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검사회의에서 행한 연설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법무부 장관의 연설일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법무부 장관은 우리로 치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역할을 겸한다고 보면 됩니다. 잭슨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전범재판에 미국을 대표하는 검사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 연방 대법관으로 임명돼 유명한 판결도 많이 남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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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연설의 백미는 다음 대목입니다. 좀 길지만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검사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모든 집단에 대해 가능한 최대한 거리를 두고 공정한 시각을 지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법집행은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검사라는 직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검사도 고소·고발이 제기된 사건 전부를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경찰이 교통 법규를 있는 그대로 엄격히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랬다가는 매일 아침마다 운전자들의 절반은 체포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검사가 실제 업무에서 해야 하는 일은 기소할 사안을 고르는 일, 즉 혐의가 가장 명백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가장 크고 증거가 가장 명확한 사안을 고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검사가 기소할 사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곧 기소할 대상 ‘인물’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검사의 권한에서 가장 위험한 측면입니다. 즉, 검사는 기소할 필요가 있는 ‘사안’을 고르기보다는 처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고르게 됩니다. 법전에 규정된 수만가지 범죄를 적용하다 보면 검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최소한 하나쯤의 법 위반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범죄가 자행된 사실을 먼저 발견한 뒤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아내는 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먼저 선택한 뒤 법전을 뒤지고 조사를 벌여 그 사람에게 범죄 혐의를 갖다 붙이는 식이 됩니다. 검사가 싫어하는 사람, 괴롭히고 싶은 사람, 사회적 혐오 대상인 집단 등을 고른 뒤 그의 혐의를 찾아내는 검사의 왕국, 여기에 검찰권 남용의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왕국에서 법집행은 사유화됩니다. 실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대신 지배적 집단 또는 집권층에 우호적이지 않은 게 죄가 되고, 동떨어진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게 죄가 되고, 검사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그의 길을 방해하는 게 죄가 됩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80여년 전 미국에서 행한 연설인데, 어쩌면 이리도 지금 이곳 검찰의 행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지 놀랍습니다.
검찰 권력에 내재한 위험, ‘사람을 선택하는 수사’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은 직접수사 역량을 온통 야당과 전 정권 인사들,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 등을 수사하는 데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수사가 몇 건인지 세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에프시, 쌍방울 대북송금, 위증 교사 수사에 이어 최근엔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소환조사를 통보했습니다. 경찰이 수없는 압수수색 끝에 불송치(무혐의) 결정한 사건을 다시 꺼내든 것입니다. 이번 소환 통보는 민주당이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습니다. 정상적인 수사 절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잭슨이 지적한, 죄가 아닌 사람을 선택해 수사하는 행태의 전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죄가 아닌 사람을 선택하는 수사’는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표적 삼는 수사를 지칭하지만, 누군가를 소극적으로 봐주는 수사도 동전의 양면처럼 본질상 같다고 할 것입니다. ‘죄의 경중이 아니라 사람의 경중에 좌우되는 수사’입니다.
현 정부 검찰이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에서 보이는 행태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검찰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현 정부의 검찰은 잭슨이 경계한 “검사의 왕국”, “검찰권 남용의 가장 큰 위험”, “법집행 사유화”의 적나라한 표본처럼 보입니다.
물론 과거 정부 때라고 다를 바는 없었습니다. 멀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부터 가깝게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까지 왜곡·조작된 공안사건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비롯해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사건, ‘피디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 정권의 눈엣가시를 표적 삼은 사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 대한 수사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까지 더해진 표적·과잉 수사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잭슨의 연설이 지금 이곳에서 현실적합성을 갖는 이유는 그가 예지력을 가졌기 때문은 물론 아닙니다. 검찰 권력에 내재한 본질적 위험을 제대로 통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고, 우리나라 검찰은 그런 위험성을 고도로 집적해온 사례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물론 미국 검찰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편향이 자주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인종주의라는 또다른 차원의 편향을 극대화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인종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지고, 특히 흑인 남성은 가벼운 범죄만 저질러도 손쉽게 징역형으로 처벌받곤 합니다. 흑인 체포 과정에서 경찰이 저지르는 치명적 폭력은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이런 경찰관들을 웬만해선 기소하지 않습니다. 잭슨이 그토록 경계했던 검찰의 모습입니다.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유죄 판결 받는 게 재능있는 검사”
그렇다면 잭슨이 제시했던 ‘권한을 올바로 사용하는’ 검사상은 현실에서 애당초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인 애비 스미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좋은 검사일 수 있을까?’(Can You Be a Good Person and a Good Prosecutor?)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질문과 같은 제목의 2001년 논문에서입니다. 그 논지를 요약해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수감 인원은 국민 147명 중 한 명꼴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율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하면 6배 내지 10배에 이릅니다. 특히 흑인과 빈곤층이 과잉 처벌되고 있습니다. 흑인 인구 비율은 13%인데 수감자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같은 행위인데도 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처벌하지 않는, 인종차별적인 법집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검사들은 그저 일상적인 일을 할 뿐이지만, 이 잘못된 상황을 유지·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검사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너무 강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는 이유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태생적으로 지닌 것처럼 여깁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를 처벌하는 검사라는 직책에는 내재적으로 허영심과 과대한 자신감이 따라옵니다. 자신이 기소하는 대상에 대해선 경멸감을 느낍니다. 많은 검사들은 검찰만이 유일하게 선한 집단이라고 믿게 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검찰 조직문화상 모두를 ‘유죄추정’합니다. 혹여라도 범죄자에게 놀아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을 의심부터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행위가 아닌 행위자에 집중할 때 이런 편견과 불공정은 심화됩니다.
개별 검사가 조직문화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검찰의 재량권은 강하지만, 낮은 직급 검사에게는 재량권이 사실상 없습니다. 조직 내 위계질서 때문입니다. 또 기소하지 않는 쪽으로 재량권을 행사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일단 재판에 넘기고 보자는 쉬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경우 일단 기소하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검사들은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합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법원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체적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무조건 유죄 판결을 받는 데 몰두하는 검찰을 비꼬는 법조계 격언이 있습니다.
“진범을 상대로 유죄 판결을 받는 건 어느 검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유죄 판결을 받는 건 정말 재능있는 검사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검찰 체제에서 검사는 정의와 공정 같은 가치의 구현자가 아니라 불공정하고 가혹한 형벌 체제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스미스 교수의 결론입니다. ‘좋은 사람’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스미스 교수는 학창시절 정의와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한 제자가 검찰에 들어간 뒤 어느덧 기존 검찰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직책이 사람을 압도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사회적·인종적 정의를 추구하는 로스쿨 학생이라면 아예 검찰을 지망하지 말고 다른 분야에서 형사사법체제를 개혁하는 일을 하라고 권유하면서 논문은 끝을 맺습니다. 논문이 발표된 지 17년 만인 2018년 애초 논문이 던진 질문을 다시 성찰하는 법학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스미스 교수는 자신의 답은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좋은 검사’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
이같은 질문과 답은 우리 검찰에도 적용될까요?
검찰에서 승승장구했던 검사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살핌으로써 이 질문에 간접적으로나마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마침 매우 상징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석달째 20% 초중반에 머물고 있는데(한국갤럽 기준), 부정 평가 이유로 늘 거론되는 게 ‘소통 미흡’과 ‘독단적·일방적’ 태도입니다. 민심에 귀기울이지 않는 불통의 상징처럼 돼버렸습니다.
채 상병 순직 수사외압 사건에서 윤 대통령의 격노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논란도 빚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성향과 태도는 평생 몸담아온 검찰에서 형성 내지 강화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검찰조직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검사 출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채 상병 순직을 ‘군 장비 손괴’에 빗대 연설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 둘의 공통분모인 검사 경력과 공감능력 상실의 연관성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탄핵소추를 당한 검사들은 어떻습니까? 고발사주 사건의 손준성 검사, 리조트 접대와 처남 마약수사 개입 등 의혹을 받는 이정섭 검사, 공소권을 남용해 보복 기소를 한 안동완 검사 역시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검사들입니다.(안동완 검사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가 기각했는데 이는 검사의 행동 규범을 정립해나가는 데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탄핵소추가 발의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조사 절차를 앞두고 있는 검사들도 조직 내에서 인정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이들의 혐의 내용은 법사위 조사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탄핵소추된 검사들의 행동과 성향 등이 조직 내에서 기피되기는커녕 용인되고 오히려 권장된다는 점입니다. 이들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감찰이나 징계 등 자정 작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인사에서 승진하거나 주요 보직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줍니다.
법집행자로서 자기 성찰도 없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 하고,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정치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검사들이 검찰의 이른바 주류를 형성해 왔던 셈입니다. 검찰 조직은 이제 국민의 신뢰를 잃고도 그 상황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검사’를 기대할 수 있을지, ‘좋은 검사’가 되려는 개별적 노력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잭슨의 통찰대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검찰이라는 직책, 검찰이라는 제도 자체에 내재한 위험입니다. 비대한 권한을 누리는 반면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는 데서 오는 위험성입니다. 이를 방지하는 길은 ‘좋은 사람’이 검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비대한 권한을 분산시키고 권한 행사가 견제받을 수 있는 제도적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 ‘좋은 검사’가 될 수 있고, 설령 ‘나쁜 사람’일지라도 ‘좋은 검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이어가려 합니다. 7월23일 두 번째 질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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