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흥행 재난물 공식 그대로, 안전한 '탈출'

강효진 기자 2024. 7. 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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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제공ㅣCJ ENM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최첨단 VFX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로 기선제압하는 스펙터클 재난물이다. 다만 흥행했던 재난 영화 레시피를 고스란히 따라서 안전하게 만든 것만 같은 아쉬운 선택의 '탈출'이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 이하 탈출)은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을 받아 전세계에 공개된 이후 약 1년 만에 올해 여름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입이 떡 벌어지는 스케일, 실감나는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고 인물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긴박하게 탈출 루트를 찾아가는 구성이다. 지금껏 봐왔던 재난영화 공식대로 펼쳐지는 만큼 속도감 있고 안정적인 전개다. 다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기시감이 들 수 있다.

설정부터가 인물들을 극한 재난 상황에 몰아넣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상이다. 인천공항 방향으로는 다리를 끊어버리고, 서울 방향으로는 유독가스를 살포해 사람들을 다리 위에 고립시켰다. 공중은 짙은 안개로 막아버리고, 아래로는 70m 높이라 뛰어내리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사방을 틀어막은 뒤 전파를 끊어 동동거리게 만들었다. 여기에 '탈출'만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치인 군견 떼가 난입해 긴박함을 더했다. 설상가상, 정치적 상황까지 더해져 혼란함과 변수가 더욱 커졌다.

메인 빌런인 군견 설정은 '칩을 심어놔 통제가 가능한 살상병기인데, 갑자기 통제를 벗어난다. 난데없이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해 모두 물어 죽인다. 얼마나 강력하고 빠른지 완전무장한 특공대원들도 몰살 당할 정도다. 100중 추돌 사고로 수백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역대급 대형 재난에서, 순식간에 생존자는 주요 등장인물 몇 명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살아남은 등장인물 모두가 예상 가능한 행동을 보여줄 만큼 기능적이다. 딸을 지키려는 아빠이자 재난 상황을 이끄는 리더 차정원(이선균), 하지 말라는 짓을 자꾸 해서 아빠와 관객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딸(김수안), 이기적이고 얄밉지만 유머 담당이자 조력자인 렉카 기사 조박(주지훈), 눈물샘 자극하는 치매 아내와 남편(문성근, 예수정), 사건의 원흉인 사회성 없는 괴짜 과학자(김희원), 국민들 목숨보다 개인의 이득을 생각하는 정치인(김태우) 등이다.

재난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들 모두가 각각 '어떤 장면'을 위해서 설정된 캐릭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박주현은 '역시 이러려고 굳이 골프선수였나' 싶게 주특기인 골프 스윙으로 탈출에 기여한다. 이처럼 어느 타이밍에 쓰일 것만 같은 탈출용 인력과 아이템이 스크린에 훤히 보여서 '아이고 뻔해'라고 느껴질 만큼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인 차정원은 오프닝부터 피랍된 국민 목숨보다 선거 판세를 우선하는 효율적인 '정무적 판단'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비호감 레벨을 쌓는다. 그래놓고 역지사지로 재난을 마주한 그가 탈출하는 과정을 곧바로 응원하며 몰입하긴 어렵다. 나머지 인물들 역시 개개인의 서사가 약해 공감대를 자아내지 못한다. 심지어 앞다투어 짜증 지수를 높이는 말과 행동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피로도를 높인다.

모름지기 재난영화라면 스크린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듯한 체감적 공포가 주된 매력이다. '탈출'은 여기까지는 성공했지만, 아는 사람처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들, 이들의 생존 사투를 응원하고 숨가쁘게 따라가며 체험하는 즐거움, 극한 상황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극복하고 극적인 탈출의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미덕은 보는 이들에 따라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칸 상영버전보다 감정 과잉인 컷들이 상당 부분 정리돼 러닝 타임이 5분 가량 줄었다는 김태곤 감독의 말이다. 여기에 신파 요소가 5분 씩이나 더해졌다면 관객들의 몰입이 더욱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가 최첨단 VFX를 입어 실감나게 구현됐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역대급 대규모 연쇄 차량 추돌 장면,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 헬기 추락 장면, 폭파 장면 등 볼거리는 풍부하다. 공감이 쉽지 않은 캐릭터에 몰입해 열연을 펼친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 극장가의 입맛 까다로운 관객들이 과연 이런 '뻔한 맛'에 순순히 마음을 내줄지는 의문이다. 고립된 다리 위가 아니라 극장을 탈출하고 싶어지면 곤란한 일이다.

오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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