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사천시청’ 박인아, 농구와 공부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이재범 2024. 7. 9. 10: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이재범 기자] “농구를 할 때는 농구에 100%를 쏟을 거고, 농구를 하지 않는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한다..”

박인아(166cm, G)는 동주여고 시절 박지현(뱅크스타운), 신이슬(신한은행), 이소희(BNK) 등과 함께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꾸준하게 이름을 올렸다.

박인아는 고교 졸업과 함께 프로 직행보다 대학 입학을 선택했다. 고교 시절 남다른 재능을 뽐낸 박인아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1학년임에도 이상백배 한일대학선발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남자 대학부에서는 1학년을 무조건 안 뽑는다. U19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부산대가 한 때 박인아의 팀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박인아는 대학무대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3학년 때 아킬레스건 부상이란 암초를 만났다.

고교 졸업과 함께 프로에 뛰어들었다면 1라운드에 지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참가한 2022~2023 WKBL 신입선수선발회에서 3라운드 2순위로 겨우 부산 BNK 유니폼을 입었다.

아킬레스건 부상 후 복귀했을 때 대학무대에서는 통하는 기량이었지만, BNK에서는 박인아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박인아는 2022~2023시즌 3경기 출전에 그쳤고, 지난 시즌에는 1경기도 정규리그 코트를 밟지 못했다.

박인아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BNK를 떠났다. 박인아의 꿈은 프로 은퇴 후 임용고시(공립 중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를 치러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천시청의 입단 제안을 받은 박인아는 실업무대에서 한 번 더 농구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태백시장배 전국실업농구연맹전에서 데뷔했지만, 액땜도 치렀다. 경기 중 눈 부위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부상 당시에는 안와골절까지 걱정할 정도였지만, 다행스럽게 골절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박인아는 한동안 눈 주위에 시퍼런 멍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선생님이 되는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농구도, 공부도 모두 매진하고 있다.

김승환 사천시청 감독은 “우리 팀에서 가장 먼저 나와서 훈련하는 선수가 박인아다. 오전 9시 30분부터 훈련인데 8시 전에 나와서 몸을 풀며 훈련을 준비한다”며 “오전 훈련을 마치면 식사 후 보통 휴식을 취하는데 박인아는 목표하는 바가 있어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박인아는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지만, 실업무대에서 농구와 공부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인아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사천시청으로 오게 되었나?
BNK를 나오면서 농구를 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사천시청에서 너무 좋은 조건으로 농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너무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여기 안 올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래서 오게 되었고, 온 김에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한다.

프로와 실업의 차이가 있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 다 경쟁이지만,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무게의 차이는 있다고 느껴진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아서 해야 한다. 책임감은 다 가지고 있는데 프로와 실업 선수의 책임감은 결이 다른 느낌이다. 무게감은 각자 느끼기에 제가 느끼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부담감은 조금 더 없이 훈련을 한다.

프로에서 기량을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거다.
아쉽긴 하다. 모두가 그렇듯 포부를 가지고 입단하는데 제가 그곳에서 2년이나 역량을 펼치지 못한 건 제 자신의 문제이고, 제가 적응을 못하는 등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걸 고집하는 것보다는 농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은 달라질 뿐 제가 농구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곳에서만 묻혀서 썩히기보다 넓은 곳으로 나와보고, 또 좋은 기회가 온다면 (프로에서 다시)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농구를 이어 나가자는 생각으로 운동을 한다.

프로에서 기회를 받으려고 했다면 가드라서 스피드가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기회를 받으려면 여기서 스피드를 좀 더 올려야 한다.
아무래도 프로도 어찌 보면 경쟁이고, 그걸 이겨내야 한다. 그곳에서 제가 선택되도록 감독님께 보여줬어야 하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팀 운동보다 개인운동을 통해 찾아내야 한다. 저는 그걸 찾지 못했다. 여기서는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사천시청에서 좀 더 노련할 필요도 있어서, 스피드를 예전만큼 찾으면 좋지만, 만약 안 되더라도 리듬감을 가지고 농구를 할 수 있는 게 제 목표다.

태백에서 실업대회(태백시장배 전국실업농구연맹전)를 치렀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혼자서 부담을 가졌다(웃음).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많은 준비를 하고 나간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갔다. 운동도 얼마 하지 못하고, 손발을 맞출 시간도 없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아쉽게 경기를 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고, 플레이도 원래 가진 것보다 훨씬 적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데뷔 무대를 세게 치렀다고 생각하고, 몸도 마음도 망신창으로 다녀왔지만(웃음), 액땜을 했다고 치고 다음 대회를 잘 준비하려고 한다.

준비 기간이 적었던 걸로 안다. 얼마나 준비했나?
기간은 한 달인데 사천시청에 와서 재활을 하고, 연습경기도 몇 번 못 했다. (선수단이) 10명이 안 되어서 자체 5대5가 안 되기에 5대5 훈련도 많이 못 했다. 김지은 언니는 들어와서 일주일 만에 대회에 나간 거다. 정아름 언니도 2주, 저는 3주 정도 훈련하고 나갔다. 손발을 맞추기보다 경기를 뛸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팀 플레이는 서로 아쉬웠다.

신한은행이 사천으로 전지훈련을 왔을 때 같이 훈련했다.
너무 좋았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누군가의 압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체로 체력훈련을 하니까 훨씬 더 이를 악물고 하게 되었다. 프로구단이 여자농구에서 최고점에 있는 곳이라서 그곳에서 배우는 거라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팀 전체가 함께 했다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함께 훈련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사천시청은 종별선수권과 전국체전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어떻게 훈련하나?
신한은행과 훈련 후 7월부터 팀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감독님의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훈련을 하겠지만, 수비를 강조하셔서 로테이션 수비를 많이 연습하고, 포지션별로 훈련하면서 손발만 맞으면 문제없을 거 같다.

팀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
같이 뛰는 선수 따라 다르다. 1번(포인트가드)을 보는 아름 언니가 들어올 때는 공격적이고 좀 더 뛰어주는 2,3번(슈팅가드, 스몰포워드) 역할을 해야 하고, 아름 언니가 휴식을 취할 때는 1,2번 역할로 속공을 같이 밀어주고, 공격을 주도하면서 패스까지 나눠줘야 한다.

정영삼 해설위원과 함께 스킬 트레이닝도 했다.
너무 영광이다. 실제로 뵌 건 처음이다. 스킬 트레이닝 붐이 일어나서 모두가 다 한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는 몇몇 선수만 했다. 화려한 스킬을 쓰는 선수가 아니라서 이걸 쓸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기본으로 해야 하는 요소가 되어서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팀워크, 무조건 5명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1대1이 되어야 2대2, 3대3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삼천포여고)이 모두 기회를 받는 건 어린 선수들에게도 좋은 기회이고, 저도 자기 반성을 하고, 발전을 많이 해야 하기에 기회를 받아서 너무 감사하다.

사천시청에서 새로운 농구인생을 시작한다.
저는 농구도 농구지만, 하고 싶은 공부도 있다. 학교에서 일하는 걸 생각한다고 인터뷰마다 이야기를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할 거다. 농구를 할 때는 농구에 100%를 쏟을 거고, 농구공을 24시간 내내 끼고 있는 건 아니라서, 농구를 하지 않는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농구가 아니면 안 되는 프로에 있었다. 목숨을 걸고 죽기로 해야 하는 다짐을 하던 곳보다 여유가 생겼다. 인간적으로 성장을 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혼자서라도 가지고 선수생활을 하면서, 솔직히 50살까지 농구선수를 할 건 아니니까 이런 걸 생각하면 좀 더 발전 가능성을 찾아가는 선수로 지내고 싶다.

#사진_ 점프볼 DB(이재범, 문복주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