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미켈란젤로의 증강현실-①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로마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 이다. 시스티나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3년부터 1481년까지 8년에 걸쳐 건립한 곳으로,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고, 교황의 주요 의식을 거행하는 신성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 외에도 관광객들이 시스티나성당을 찾는 데는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로마를 여행하며 시스티나성당을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최대 걸작인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있기 때문이다. 높이가 13.20m, 길이가 40.93m에 달하는 시스티나성당의 거대한 벽과 천장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 페루지노, 보티첼리 등이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성당 측면 벽에 그려진 12개의 그림은 각각 모세와 그리스도의 일생을 묘사했다.
성당 중앙의 제단 벽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천장에는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다. 당시 조각가로 유명했던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여에 걸쳐 천장화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이 그림에는 '빛과 어둠의 창조', '해와 달과 땅의 창조', '땅과 물의 분리' 등 창세기의 주요 아홉 장면이 담겨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535년에 미켈란젤로는 교황 파울루스 3세의 요청으로 6년에 걸쳐 시스티나성당의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성당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적 건축물에 그려진 벽화와 천장화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류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인 사후 세계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낸 것을 들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인류가 성경을 통해 상상으로만 경험한 신비한 이야기들, 특히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최후의 심판이 펼쳐지는 순간과 그 이후 벌어질 지옥과 천국의 사후 세계를 자신만의 해석을 보태 상상력으로 마치 눈앞에서 보듯 역동적이고 상세하게 표현했다.
이전까지 사후 세계는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묘사한 텍스트로만 존재해왔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상상력으로 탄생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관람한 이후로 사람들은 마침내 천국의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천국의 기쁨, 지옥의 고통, 예수님과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에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됐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표현하며 단테의 '신곡'을 중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물론 두 천재의 표현 방식은 매우 달랐다.
단테는 천국, 연옥, 지옥의 공간을 거시적 시각으로 그랜드 디자인을 했다면, 미켈란젤로는 미시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더욱 생생하게 재현했다. 즉,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을 참고하되 이를 회화라는 기법을 활용해 다른 버전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중세 교회 예술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최후의 심판'을 벽화로 창조하며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을 크게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와 같이 다섯 개 부분으로 나눴다.
'신곡'에서는 단테가 역사 속 주요 인물들을 평가해 지옥, 연옥, 천국에 각각의 위치를 매겼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로 차례를 매겨나가는 것으로 이를 시각화했다.
미켈란젤로는 성경의 내용을 자신만의 해석과 상상력으로 시스티나성당의 공간에 맞게 구상하고 기획했다. 중앙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도 이전까지 흔히 그려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수염도 나지 않은 젊고 당당한 나체의 남성으로 파격적으로 표현되었다. 그 곁에는 성모마리아가 앉아 아래에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 있다. 여기는 천사에 가까운 성자들의 세계다.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천상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켈란젤로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67.14㎢의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에는 모두 391명의 인물상이 있으며, 이들은 제각각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지옥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돼있다.
덕분에 과거에 이어 현재까지도 많은 관람객이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보면서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며 간접 경험을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릴 때 건축적 구조에 의해서 만들어진 여백의 공간을 매우 잘 활용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여러 장면을 마치 콜라주처럼 편집하고, 관람하는 이의 동선까지 고려해 그림을 배치했다.
관람자가 동선을 따라 벽화를 보면 마치 미켈란젤로가 치밀하게 기획해놓은 가상의 공간에서 성경 속 여러 사건에 함께 참여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를 당시의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로그인하여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는 그 시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를 회화로 표현하는 묘사적 기술력을 가지고 물감과 연필 등의 재료를 활용해 당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버추얼 리얼리티를 탄생시킨 것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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