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사주풀이하고 있는 옛 '도로교통공단' 사이트

송재민 2024. 7.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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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공사이트]④'or'이지만 '영리 사이트'
비영리 목적 'or.kr', 사주풀이·일본어 사이트로 변질
3000원으로 등록인 정보 숨김 가능…사후관리 부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도메인(domain), 즉 인터넷 주소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공공기관, 정부까지 모든 사회 주체들이 도메인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이용'해 도메인을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앞서 비즈워치는 금융감독원이 수십년간 사용하던 증권범죄신고센터(사이버캅, cybercop.or.kr)가 불법 도박사이트로 이어지는 모습을 포착, 이를 단독 보도했다. 이어 후속보도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도메인을 전수 조사해 관리 실태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도메인 관리는 비단 금감원만의 문제가 아닌 정부 및 공공기관 전역에 퍼져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편집자]

경찰청 산하 도로교통공단의 과거 도메인(rtsa.or.kr)이 10년 넘게 사주풀이 사이트로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과거 한국학술진흥재단 시절 사용하던 도메인(krf.or.kr)은 현재 일본어 사이트로 바뀌었다. 

두 사이트는 모두 비영리기관만 사용할 수 있는 'or.kr' 도메인이다. 준정부기관이 공공목적으로 사용하던 도메인이 지금은 방치된 채 부적절하게 쓰이는 상황이다. 13년 째 사주풀이 중인 옛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

비즈워치가 행정안전부 공식 누리집에서 안내하는 총 5826개 사이트와 정부조직 19부, 3처, 19청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or.kr' 도메인 39개가 영리목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면허 관리, 교통안전 교육·홍보를 맡고 있는 도로교통공단은 과거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시절 사용하던 'rtsa.or.kr' 도메인을 현재 'koroad.or.kr'으로 바꿨다. 참고로 도로교통공단은 2008년 명칭을 변경했다. 

문제는 과거에 쓰던 'rtsa.or.kr'이 현재는 사주풀이 사이트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이트 이름은 '팔자닷컴'으로 사주, 궁합, 해몽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과거에 쓰던 주소를 버리고 새로운 도메인으로 갈아타자 빈 도메인을 사주풀이 사이트가 꿰찬 것이다. 

과거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홈페이지 도메인이 현재 한 사주풀이 사이트로 활용되고 있다.

'or.kr' 도메인은 비영리목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도메인이름관리준칙'(제4조 2항)에 따르면 'or.kr' 도메인은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해당 도메인은 지난 2011년 3월부터 현재까지 13년 넘게 송모씨라는 이름의 개인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등록정보 변경일은 지난달 3일이다. 해당 도메인에 대한 별도의 제재가 없다면 송모씨는 오는 2026년 3월까지 사주풀이 사이트로 해당 도메인을 계속 쓸 수 있다. 2011년부터 무려 15년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메인 등록대행자는 '호스팅케이알'을 운영하는 메가존이다. 메가존은 앞서 보도한 대로 '경상남도청소년수련원'(gnyouthtc.or.kr), 금융감독원의 인터넷 증권범죄 신고센터(사이버캅, cybercop.or.kr) 도메인도 불법도박사이트로 등록한 곳이다. ▷관련기사: [단독]불법도박사이트 안내하는 여가부 공식 누리집(7월5일)

일본어로 도배된 'or.kr', 누가 등록했는지도 몰라

도로교통공단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이 과거 한국학술진흥재단 시절 사용했던 도메인 'krf.or.kr'은 현재 일본어로 가득찬 사이트로 변질됐다. 이 도메인을 접속하면 일본어가 나오는데 인테리어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1981년 설립된 한국학술진흥재단은 2009년 한국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한국연구재단으로 바뀌었다. 이후 공식 사이트 주소를 변경하자, 과거 사용하던 도메인이 일본어 사이트로 변질된 것이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사용하던 도메인(krf.or.kr)이 현재 한 일본의 인테리어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쓰이고 있다.

특히 해당 도메인은 누가 등록해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2019년 11월 가비아씨엔에스라는 곳이 해당 도메인을 등록한 것으로 나온다. 가비아씨엔에스는 도메인 등록대행자 가비아의 자회사다. 가비아는 도메인 등록사업을 하고,가비아씨엔에스는 쇼핑몰과 홈페이지 제작을 한다.

하지만 가비아씨엔에스는 표면적인 도메인 등록자일뿐 실제 한국연구재단의 과거 도메인을 누가 등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등록자가 '도메인 등록정보 숨김 서비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도메인 등록정보 숨김 서비스'는 가비아, 메가존 도메인 등록대행자에게 일정한 비용(가비아의 경우 3000원)을 지불하면 도메인 등록인 관련 정보(이름, 주소, 책임자, 책임자 이메일, 전화번호 등)를 도메인 등록대행자 정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가비아 관계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이 서비스를 사용하면 분쟁조정이나 경찰 영장 제시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실질적인 등록인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는 일본어로 도배된 한국연구재단의 과거 도메인을 누가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문제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와야만 도메인에 대한 관리조치가 이루어진다. 

이 도메인을 등록한 가비아 관계자는 "사후 관리는 신고에 의해서만 검토하고 있다"며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내부 검토 후 관리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로교통공단과 한국연구재단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운영하던 '한국P2P금융협회(p2plending.or.kr)' 도메인은 현재 불법도박과 출장 마사지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던 나라사랑큰나무(korealovetree.or.kr)는 판촉물 제작 업체 사이트가 사용하는 상황이다. 

그 밖에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던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startupidea.kr)' △금융위원회가 운영하던 '기업금융나들목(smefn.or.kr)'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던 농어촌종합정보포탈(nongchon.or.kr)' △디자인코리아(designkorea.or.kr) △한국전산원(nca.or.kr) 도메인도 영리 목적의 사이트로 자동 연결되고 있다.

송재민 (makmi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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