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 팝아트’ , 사회·경제·정치를 넘나들다
생계 위해 옥외광고 그린 작가
동료죽음 목격한 후 전업 선회
환경·에이즈 등 사회이슈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등 담아
초현실 작품… 팝아트 장르 확장
미공개 원화 중심으로 전시구성
미국 미술의 정수는 팝아트이고, 이는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이들에 비해 한국엔 덜 알려져 있으나 팝아트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사진). 그는 본래 생계를 위해 옥외 광고나 상점 간판 등을 주로 그리던 작가였고, 1950∼1960년대 뉴욕의 대형 광고는 전부 그가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광고를 제작하고 남은 물감으로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어느 날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전업 작가로 선회한다. 가볍고 경쾌한 그림으로 시작해 생태, 환경, 정치로 관심사를 확대했으며 ‘팝아트의 거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을 던져 ‘사회운동 하는 작가’, 혹은 ‘팝아트 하는 사회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로젠퀴스트의 삶과 작품 세계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개막한 ‘제임스 로젠퀴스트:유니버스’로, 단체전이나 상업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 개인전으로서는 국내 최초다.
전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회화와 콜라주, 전시 안내 책자 등 아카이브 자료를 총망라한다. 특히, 작가의 광범위한 관심사와 작품에 드러난 회화적 기법, 추상적 요소 등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기에, 미술관 측은 팝아트 전시에서 주로 출품되는 판화가 아니라 국내 미공개 원화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전했다.
출품된 29점의 회화는 광고를 그리던 대중적, 상업적 감각의 팝아트 작가인 로젠퀴스트가 점차 인간과 사회를 파고들고, 세계와 우주까지 통찰하고자 했던 ‘남다른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규정이란 것이 애초 ‘바깥’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일 터, 몇몇 작품만 봐도 그를 ‘팝아트 작가’로만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컨대, 가로 폭이 10m가 넘는 대형 작품 ‘시간 먼지-블랙홀’을 비롯해 시간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도록 초·분·시침이 엉켜있는 ‘시계 중앙의 공백-시간 기록자’나 ‘수학적 다중 우주로 들어가는 입구’ 등은 작가가 시간과 공간인식 탐구에 천착해온 과정 그 자체다. 평소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한 작가는 이들 작품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표현과 화면 구성을 보이기도 하며, 근작으로 갈수록 점차 기법 역시 추상화된다.
폭이 6m가 넘는 또 다른 대작 ‘우주를 응시하는 부유한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 이슈부터 과학적, 우주적, 실존적 문제를 아우르는 작가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작가는 자동차 바퀴의 휠을 모티프로 거대한 우주를 형상화했으며, 이를 바라보는 인간 사이 앞에 마치 장벽처럼 동전 탑을 그려 넣었다. 이것은 세상의 신비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을 막는 눈앞의 현실, 물질주의, 자본주의 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우주도 인간도 결국 영원한 미스터리일 뿐이라는, 유일한 진실을 전한다. 그림 앞에서 언젠가 그가 뉴욕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남겼다는 말을 곱씹어 봐도 좋겠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우리는 자연에 있고, 우주의 신비가 주변에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그리고 싶다.”
깊고 넓은 세계를 가진 새로운 팝아트 작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전시는 둘러볼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 1980∼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문제가 첨예했을 때 그린 ‘포장된 인형 8번, 클로드 드뷔시의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나 캔버스를 뚫고 실제 시계 침이 돌아가는 작품인 ‘일식’ 등을 보면, 기존 팝아트에 대한 인식도 확장된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계속되며, 입장료는 1만5000원(성인기준)이다. 문화가 있는 날과 점심시간을 이용한 직장인 입장은 무료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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