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카메라 들고 “볼하트 해줘~” ‘야구 덕질’에 열광하는 여성들
확 바뀐 KBO 팬 문화
아재팬 대신 여성팬이
흥행몰이 주축으로
지난 2월초 프로야구 선수들이 일제히 다음 시즌을 위해 스프링캠프로 떠나던 날이었다.
다수의 팬들도 이날 공항을 종종 찾는다. 자신이 사인을 받고 싶은 선수에게 요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속을 마친 선수들은 사인에 응해주거나 함께 ‘셀카’를 찍어준다.
그런데 올해 풍경은 달랐다. 여성 팬들이 선수들에게 동물의 귀 모양을 한 머리띠를 씌운다던가 아이돌 가수가 하는 포즈인 ‘볼하트’를 요청해 그 모습을 찍었다. 선수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팬들의 요청에 응한다.
선수들을 부르는 호칭들도 달라졌다. 야구장을 찾은 여성 팬들이 선수를 부를 때 이름 끝에 ‘선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름을 부른다. 가령 삼성 좌완 이승현을 부를 때 “이승현 선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승현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대포’라고 불리는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여성팬들의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관중석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나올 때면 카메라 렌즈가 그 쪽으로 향한다.
이전에도 야구계에는 여성 팬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 그전에는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는 선에서 그쳤다면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팬 문화도 많이 바꿔놓았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같은 문화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야구판에 아이돌 팬들이 유입되었다. 아이돌 가수들은 공연이나 방송 녹화날 등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서 만날 수 있는 반면 야구 선수들은 야구장에 가면 자주 접할 수 있다. 아이돌 팬들 중 일부가 야구판으로 눈을 돌리면서 팬 문화도 가져온 것이다. 선수의 이름을 “OO야”라고 부른다던가 유행하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은 기존 아이돌 판에서 팬들이 했던 문화였다.
이런 팬들이 많이 늘어난 팀들은 젊은 선수가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 롯데 등이다.
삼성은 이른바 ‘굴비즈’라고 불리는 이재현, 김지찬, 김현준 등이 활약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비율도 여성이 더 많다. 지난해 라이온즈파크를 찾는 팬들이 구매한 티켓 중 29만9663장은 여성이 예매한 것이었다. 남성은 28만5104장을 예매했다. 올시즌 전반기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진다. 여성이 28만1276매를 구입했고 남성이 구입한 건 25만5471장이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윤동희, 나승엽, 고승민, 김민석, 손성빈 등 젊은 선수들이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라운드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중이다.
지난해 롯데가 고객 분석을 한 현황에 따르면 KBO리그 고객층이 40대 남성에서 20대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롯데 여성팬 비율은 65%로 리그 2위였다. 1위는 키움(73.2%)였다.
이들이 마냥 선수들의 외형적인 모습만 보고 쫓아다니는 건 아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상에서도 여성팬들은 심도 있게 경기 분석을 내놓는다. X(옛 트위터)에서도 실시간 의견 교류가 이어진다.
과거 프로야구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제 여성이 프로야구 흥행 몰이는 물론 팬 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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