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체육 통해 만난 '찐'행복" 배동현 파리패럴림픽 선수단장.장애인스포츠에 진심인 젊은 CEO의 꿈[파리패럴림픽 D-50]

이원만 2024. 7. 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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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파리패릴럼픽 양궁대표팀과 함께 파이팅!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스포츠조선 전영지, 이원만 기자] "선수들이 '파리패럴림픽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라고 해준다면 저 또한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장애인스포츠를 통해 내 인생이 훨씬 값져졌다"고 말하는 젊은 CEO가 있다. 창성그룹 배동현 총괄 부회장이다. 하지만 그는 '창성그룹 총괄 부회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선수들을 향해 큰절을 올린 젊은 선수단장'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파리패럴림픽 후 선수단에 큰절하는 배동현 선수단장.
창성건설의 후원으로 기적을 일군 철인 신의현의 평창패럴림픽 동게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 금메달 현장에서 배동현 단장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6년 전인 2018년 평창패럴림픽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선수들을 응원하며, 금메달 1개와 동메달 2개의 역대 최고 성적을 일궈낸 30대의 젊고 에너지 넘치던 선수단장은 이제 또 하나의 막중한 임무를 어깨에 걸었다.

50일 앞으로 다가온 2024 파리패럴림픽의 선수단장으로서 한국 장애인체육의 새 역사를 쓸 준비를 하느라 24시간이 모자르다. 그는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이어 파리하계패럴림픽 단장까지 맡으며 '역대 최초의 동·하계 패럴림픽 단장'으로 한국 장애인 스포츠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남다른 열정, 강한 책임감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장애인 체육계에서는 배 단장이야말로 이 역할을 해낼 최적임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10여 년간 장애인 체육에 관해 쏟아서 보여준 헌신과 성과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평창에 이어 파리서도 온 국민에게 감동의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배동현 단장을 지난 3일 서울 논현동 창성건설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지난달 한강 세빛섬에서 열린 파리패럴림픽 페스티벌 어울림 3X3 농구대회. 배동현 단장의 BDH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반포한강시민공원을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1위팀에 2000만원, 역대 최고의 상금을 내걸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만능스포츠맨이던 젊은 CEO, 왜 장애인스포츠에 뛰어들었나

배 단장이 처음부터 장애인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를 시작으로 '물 흐르듯'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승마 국가대표와 대한바이애슬론연맹 회장을 역임한 부친 배창환 회장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각종 스포츠를 두루 섭렵한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배 단장은 10여 년 전 장애인 바이애슬론팀의 식비와 숙박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뒤 즉각 사비를 들여 지원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애인체육과의 오랜 동행이 이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배 단장은 "첫 지원 이후 '협회가 생기면 훨씬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장이었던 정진완 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정 회장님과의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죠"라며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출발은 간단치 않았다. 당시 장애인체육 실무를 맡고 있던 정 회장은 20대 청년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공수표를 남발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배 단장은 "제가 대뜸 찾아가 연맹을 만들겠다고 하니 '어린 친구가 왜 이러나'하고 거들떠도 안 보셨죠. '장애인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혼자 아등바등 열심히 만들고 나니 가맹단체 승인(2012년 대한장애인바이애슬론연맹, 현 대한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을 해주셨고, 그러다 몇 년 뒤에는 실업팀(2015년 창성건설 노르딕스키팀)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 회장님이 많이 이끌어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평창패럴림픽 단장을 권유하시더군요. 덜컥 맡아 했더니 좋게 보셨는지 이제는 하계 패럴림픽 단장까지 맡겨주셨습니다. 정 회장님과는 농담처럼 '정말 갈 데까지 갔다'고 합니다"라고 장애인스포츠와의 긴 인연을 설명했다.

배 단장의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세계 곳곳에 장애인체육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BDH재단을 설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바누아투 등을 찾아 장애인 스포츠 활성화와 함께 사상 첫 패럴림픽 출전 역사도 이끌어냈다. 내년 IPC 정기총회 유치에도 전력투구했다. 장애인스포츠는 이미 배 단장의 '인생 과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휠체어테니스 선수들과 함께 파이팅!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사상 첫 동·하계 선수단장의 각오, 파리패럴림픽은 한국 장애인스포츠의 새 변곡점

배동현 단장은 평창패럴림픽의 숨은 영웅이었다. 패럴림픽 기간 내내 설원과 빙판에서 목이 터져라 선수들을 응원하며 눈물을 훔치던 '응원단장'이자 선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신경 쓰던 '어머니' 역할도 해냈다. 관중에게는 사비를 들여 '반다비 인형'을 쾌척했고, 선수들에게는 개인 금메달 1억원, 단체 금메달 3억원의 포상금을 아낌없이 내준 인심 좋은 '큰손'이었다. 덕분에 선수들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고, 배 단장은 해단식날 선수들에게 큰절을 하면서 또 다른 감동적인 장면을 선사했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과 배동현 파리패럴림픽 선수단장. 정 회장이 문체부 장애인체육과장 시절 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을 만들겠다며 찾아왔던 젊은 CEO와의 첫 인연이 대한민국 장애인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의 기적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기적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배 단장은 "이번 대회에서는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패럴림픽 이후 성적이 점점 내려오다 지난 도쿄패럴림픽 때 워낙 저조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건 정 회장님 취임 이후 장애인 체육에 관해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온 것들이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는 데 8~12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파리패럴림픽 때 획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는 성과로 이어지는 변곡점이 돼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라며 파리패럴림픽의 목표를 밝혔다.

여자골볼대표팀과 함께 파이팅!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인생의 영웅'들이 출전하는 패럴림픽, 장애인스포츠만의 휴먼스토리

배 단장은 이번 패럴림픽을 통해 온 국민이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길 바라고 있다. "'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고, 패럴림픽에는 영웅이 출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된 한 인간이 좌절을 극복하고, 방구석에서 세상으로 나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인생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감동이고, 영웅담입니다"며 패럴림픽의 '진짜' 관전포인트를 짚어줬다.

한 기업을 이끄는 젊은 CEO로서의 역할도 녹록지 않은데, 대한민국 선수단장으로서 파리패럴림픽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배 단장은 오히려 "장애인체육을 접하며 내 인생은 전보다 훨씬 값져졌다"고 했다. 그는 "나는 신체가 건강하고, 좋은 환경 속에 있는데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선수들을 보면서 주어진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여러 삶의 사연들, 인생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분들로부터 좋은 영향력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런 영향력은 배 단장을 움직이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었다. 그는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의욕도 더 많이 생기니 사업도 열심히 하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관심과 응원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딸과 세돌 지난 아들이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다양성을 아는 아이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부모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열정을 장애인 체육에 쏟아 붓고, 이를 통해 얻은 행복감을 다시 열정의 에너지로 삼는 배동현 단장은 마치 좌고우면하지 않고, 목표만을 위해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가 행복하게 걷는 길이 한국 장애인체육의 새로운 꽃길을 열고 있다.
전영지·이원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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