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해태의 독특한 실험…'아트 경영'에 숨겨진 뜻은

김지우 2024. 7. 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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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해태, 최근 일본서 국악공연 열어
'아트경영'의 일환…국악·조각·시 전개
임직원 참여…세계 신기록 세우기도
/그래픽=비즈워치

20년째 국악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식품회사가 있다. 바로 '크라운해태제과'다. 국악공연은 크라운해태의 'AQ((Artistic Quotient·예술가적 지수)경영의 일환이다. 문화 공연, 전시 등을 통해 단순히 할인 마케팅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고객이 창조적 체험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해외에선 한국 전통문화 알리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본서 공연한 배경

업계 등에 따르면 크라운해태제과는 최근 일본 오사카에서 '2024 한국의 풍류 오사카 특별공연'을 열었다. 이 공연엔 명인명창들의 모임인 양주풍류악회와 한음 영재들이 참가했다. 이번 공연은 일본 제과회사 가루비가 2023년 결산행사에 초청해 이뤄졌다.

해태제과와 가루비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태제과는 2003년 4월 가루비식품회사와 기술 도입과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해태제과는 고품질 '가루비 포테이토칩'을 출시했다. 일본 가루비 공장과 똑같은 수분과 유분, 염분 기준을 적용해 만든 제품이었다. 

크라운해태 일본 국악공연 /사진=크라운해태제과

2005년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한 이후인 2011년 양사는 '해태가루비'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양사의 해태가루비 지분은 각각 50%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가루비 제품의 제조, 마케팅 및 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문막에 있는 해태가루비 공장에서는 '허니버터칩' 등을 생산 중이다. 

이번 공연은 스낵 노하우 교류를 넘어 문화 교류를 했다는 것이 크라운해태제과 측의 설명이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2010년부터 일본,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베트남, 몽골 등 해외 현지에서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은 "한음(韓音)은 독창성과 예술성으로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세계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IMF 타격의 타개책

크라운해태제과는 AQ(예술가적 지수, Artistic Quotient) 경영을 20년째 지켜오고 있다. 일명 '아트경영'이다. 핵심 추진 분야는 국악공연과 조각, 시(詩)다. 아트경영은 윤 회장의 아이디어다. 

아트경영은 크라운제과가 재무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당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1997년 크라운제과는 1997년 IMF 외환위기의 후폭풍에 시달렸다. 과자 부문을 제외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유통업, 음료, 의약품, 건설업 등의 사업이 문제였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던 것이 부메랑이 됐다.

결국 크라운제과는 1998년 화의 신청을 했다. 화의란 파산 위험에 직면했을 때 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들과 채무 변제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를 말한다. 윤 회장은 화의 신청 후 참담한 심정으로 북한산 등산을 하던 중 우연히 들려온 대금 소리에 압박감을 떨치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아트 경영이다.

지난 3월 서울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린 '제100회 양주풍류악회' 특별 공연에서 양주풍류악회와 국악인 100명이 '수제천' 연주와 구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크라운해태제과

이후 대금 연주자를 섭외해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윤 회장은 국악인들과 교류하게 됐다. 이를 통해 윤 회장은 국악인들의 공연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윤 회장은 감성을 입은 좋은 과자를 만드는 예술가 집단으로 회사를 진화시키고자 했다. 이후 임직원들과 함께 공연을 꾸리기로 했다. 제과회사가 원재료, 품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감성을 입혀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윤 회장의 생각이었다. 

윤 회장은 전 직원이 과자를 만드는 단순한 기능인에서 벗어나 예술가·창조자가 되길 바랐다. 자기 내면의 예술 지성을 깨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직접 만들고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다양한 예술적 체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참여가 시작됐다.

판 커진 아트경영

크라운해태는 매해 공연을 개최한다. 한음 명인들의 '대보름명인전', 국내 최대 한음 공연인 '창신제' 등이 있다. 창신제의 시작은 2003년 크라운제과는 법정 화의 종료 기념행사를 대신한 한음공연이었다.

2004년 행사를 업그레이드해 마련한 창신제는 현재 한음 부문에서 최대 규모의 공연이 됐다. 창신제를 지속하는 경영적인 배경도 있다. 창신제가 영업전략의 일환이 됐다는 전언이다. 크라운해태제과의 영업직원들은 1차 고객인 점주들에게 창신제 초청티켓을 제공했다. 공연을 지속하면서 창신제 티켓은 동네 슈퍼마켓 등의 단골손님에게도 전달됐다.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브랜드 입지를 확대하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 크라운해태의 설명이다.

크라운제과 옛 본사 /사진=크라운해태제과

크라운해태제과는 2007년 민간기업 최초로 국악관현악단 '락음국악단'을 창단했다. 락음국악단은 매년 150회 공연, 국내외에서 1500회 이상의 공연을 진행했다. 누적 관객 수는 50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부턴 '영재국악회'를 만들어 한음 영재 발굴에도 나섰다. 한음 영재공연인 영재한음회는 매주 남산국악당에서 개최하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 6학년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경연을 펼쳐 출연진을 선발한다.

크라운해태 관계자는 "한음 아트마케팅은 연간 100만명의 고객을 모으고 있다"며 "창신제 1일 2만명, 아리랑페스티벌 10만명 등 공연에 대한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외 조각과 시작(詩作)도 전개 중이다. 조각 부문은 경기도 양주시에 100만평 규모의 복합문화 공간인 '아트밸리'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공공기관, 공원에서 여는 조각전시회 '견생전'을 만들었다. 견생전은 '보면 생명이 생긴다'라는 의미다. 2017년 세브란스 병원 어린이·암 병동 환자를 대상으로 삶의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조각전을 연 것이 시작이었다.

임직원이 만든 세계 신기록

창신제는 명인들의 전통 한음공연, 서양음악, 대중가요 등을 선보이는 무대 퓨전공연이 됐다. 특별한 점은 창신제에 크라운해태 임직원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2012년 창신제에는 임직원 100명이 3500명의 관중 앞에서 '사철가'를 떼창했다. 이는 영국의 기네스 격인 미국 월드레코드아카데미에 판소리 부문 세계 최대 인원 동시 공연으로 기록됐다.

임직원들은 조각가로도 활약했다. 전문 조각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이 직접 작품을 창작해 아트밸리에 전시하고 있다. 현장에서 눈조각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 후, 매년 우수작품 100명을 선정해 스위스 바젤, 캐나다 퀘벡, 삿포로, 하얼빈 등 해외여행 포상을 제공한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한강뚝섬공원에서 열린 '견생조각전 100회 기념전'에서 김정도 작가의 '옮겨진 치즈'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크라운해태제과

2014년엔 양주 눈꽃 축제를, 2017년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눈 조각전을 열어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임직원 600명이 만든 눈 조각은 300개에 달했다. 대규모 여름 철 눈 조각 전시회로 세계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시작(詩作) 부문에서도 직원들의 참여가 이뤄진다. 시작은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한 후 양사의 결속력을 위해 모닝아카데미가 시초다. 당시 임직원들이 시작 활동을 통해 유대관계를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제출한다. 우수작은 시집으로 출간된다. 현재 30여 편의 시집이 출간됐다. 전문 시인들이 심사해 매년 우수작을 시상한다. 회식자리에서도 시로 건배를 제의한다. 직원들이 시를 배운 이후 카피 문구가 달라졌다는 것이 크라운해태제과 측의 설명이다.

AQ경영 이어간다

이처럼 크라운해태가 꾸준히 예술 활동을 펼치는 이유는 미래 세대를 위해 AQ를 높여줄 다양한 문화 교육 및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윤 회장은 순수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윤 회장은 과자가 비만과 아토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십년 후에는 과자 산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윤 회장은 "과자를 입으로 먹는 시대는 갔다. 과자는 추억이 담긴 콘텐츠"라고 강조한다. 과자 산업이 '꿈과 행복을 파는 일'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AQ경영은 윤 회장의 생각처럼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 창의적인 마케팅 캠페인 등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크라운해태는 예술활동 지원 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예술적 접근이 모든 소비자나 직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업계의 지적도 있다.

크라운해태제과 관계자는 "1+1 덤 증정 같은 마케팅은 시장에 타격을 주고 기업도 손실을 갖는 방법이었다"며 "아트경영은 소비 촉진에 골몰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고객이 제품을 통해 창조적 체험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지우 (zuzu@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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