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이 국가 비상사태인가?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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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 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인구정책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방안과 육아휴직 지원금 인상, 신혼부부 대상 주택 공급 및 대출 확대 등 자녀 양육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정책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정부가 저출생 문제 대응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기에는 미흡하며 아직 구체적·세부적인 방안에 공백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큰 틀에서 비슷한 생각이다. 여기에 더하여 ‘비상사태’라는 표현에 담긴 정부의 접근 방식이 한국이 당면한 인구문제 대응에 적절한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국가 비상사태는 “나라에 천재, 사변, 폭동 따위가 일어나서 경찰력으로는 공공의 안녕 및 질서의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가 혼란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목적은 이처럼 급박하고 심각한 상황을 진정시키거나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가진 역량을 총집중하고 국민의 협조와 희생을 요청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비상사태 선언의 이면에는 긴급한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 위해 다른 국가적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뒤로 돌리겠다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인구문제가 엄중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매년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불과 10년 사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앞으로 50년 동안 인구가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은 비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문제는 전란, 금융위기, 코로나19 등과 같이 지금 당장 국민의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유형의 위기는 아니다. 정부의 발표처럼 장기적으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사안일 수 있지만, 단기적인 비상조치를 통해 안정시키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유컨대 응급조치가 필요한 급성질환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꾸준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성질환에 가까운 인구문제 대응에 요구되는 접근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멀리 보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책 수립과 시행에서 ‘시계’(視界)의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10년을 내다보면서 추진해도 될 일을 당장에 시행하는 데는 그만큼의 비효율과 비용이 수반된다. 외환위기나 팬데믹 등 과거 국가 비상사태의 사례를 보더라도,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한 조치를 위해 치렀던 상당한 고통과 비용이 있었다. 인구문제 대응에서는 그러한 비용을 줄이고 장기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둘째, 꾸준한 체질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은 그 뿌리가 깊고 단단해서 짧은 시간 내에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종합대책을 포함해 현 정부가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대체로 결혼과 출산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비교적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기는 어렵다. 따라서 단기적인 대책과 함께 먼 미래에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근본적·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완치보다는 신체 기능 유지와 삶의 질 제고를 지향하는 것이 적절하다. 설사 정부의 출산율 제고 노력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도,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랜 기간 인구변화의 충격을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한다. 예컨대 합계출산율이 당장 현재의 두배로 높아져도, 앞으로 20년 동안은 노동인구 감소나 연금재정 악화와 같은 문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구변화가 가져올 사회경제적인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국민의 삶이 덜 팍팍해지도록 해야 한다.

비상사태 선포에 담긴 정부의 위기의식은 이해하지만, 인구문제 대응에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전에 대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지금이 비상사태라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아주 오랜 기간을 비상사태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이는 자칫 국민의 피로감만 높일 수 있다. 또한 비상사태 선포가 정책 담당자들의 조급증을 불러일으켜서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대책에 치중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인구문제 대응은 단거리 달리기보다 마라톤에 가까움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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