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돌고 돌아, 이선균 [김지우의 POV]
[마이데일리 = 김지우 기자] 영화를 보러 가는 택시 안에서 다짐했다. 이선균 언급을 최소화한 리뷰를 쓰겠다고. 그게 여러모로 예의라 생각했다. 그러나 잊고 있었던 배우 이선균의 존재감은 묵직했고, 이는 문득문득 뭉클함을 안겼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 속 정원은 이선균과 완전히 분리해 바라볼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이 얘기가 이렇게 길다는 것은 그 밖의 영화적 체험이 그의 존재감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탈출'은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은 유학 가는 딸 경민(김수안)을 공항으로 바래다주는 길에 이 사고에 휘말린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안개는 짙고, 다리는 무너져 가고, 아래는 바다다. 실험견들은 날뛰고 도와주는 이 있을 리 없다. '탈출'은 이 재난 현장을 몰입감 있게 그려낸다. 푸르스름한 공기와 짙게 깔린 유독가스, 폭발하는 차들은 관객을 작품 속 세계로 인도한다. VFX로 구현한 실험견 역시 긴장감을 주는 데 성공한다.
정작 인물의 서사가 얕다는 게 아쉽다. 예수정·문성근이 연기한 노부부, 박희본·박주현이 연기한 자매 나름의 서사가 있지만 감동을 주기엔 얄팍하다. 재난 영화의 흔한 장치 같은 인상을 줄 뿐이다. 메인 캐릭터인 정원, 경민 부녀의 서사도 부족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이자 엄마의 이야기가 짬짬이 나오는데 '굳이' 싶달까. 이입할 대상을 못 찾으니 겉핥기식 감정들이 떠돈다. 주지훈이 연기한 렉카 기사 조박과 김희원이 연기한 양박사는 툭툭 튀는 말들만 내뱉을 뿐 매력 있는 인물로 스며들지 못한다.
영화는 결국 재난 상황 속 인간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가족의 사랑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원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선균은 폭발적인 연기가 아님에도 스크린을 압도하는 힘을 보여준다. 엔딩에서 그는 맑게 갠 하늘 아래 미소 짓는다. 미묘하다. 가장 평화로운 동시에 가장 강렬히 뇌리에 박힌다. 이에 그를 배제하고 이 작품을 느끼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결론지었다. 어떤 외부적 상황이 개입했건, '탈출'이 무언가 울림을 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오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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