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중국 유니클로' 쉬인의 한국 공략…엇갈린 시선
저렴한 가격·다양한 디자인은 강점
세부 품질 '미흡'…국내 영향 여부 관건
'중국판 유니클로'로 불리는 쉬인(Shein)이 한국 패션 시장 공략을 본격화 하고 있다. 쉬인은 지난달 한국어 웹사이트를 열며 한국 진출을 공식 발표했다. 최근에는 '한국 패션 성지'로 불리는 서울 광진구 성수동에 첫 오프라인 팝업스토어까지 열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초저가' 패션을 앞세운 쉬인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쉬인 팝업스토어 오픈 첫날인 8일 오전 매장을 방문해 쉬인 제품과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인기는 아직
쉬인 팝업스토어가 문을 연 이날 오전 11시 정각에 이른바 '오픈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수동은 최근 20대를 중심으로 패션, 뷰티 성지로 꼽히며 많은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있는 곳이다. 명품 브랜드들도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다. 인기 팝업스토어들은 대부분 오픈 전부터 긴 대기줄을 형성한다. 하지만 쉬인의 팝업스토어 앞에는 4명의 고객만이 입구 근처에서 비를 피하며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팝업스토어가 문을 연 이후에는 그나마 조금씩 고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매장에 들어온 고객들이 다수였다. 쉬인이 한국 공략을 공식화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에 비해서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쉬인의 주 고객층으로 기대되는 1020 고객들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근처를 지나가던 중 매장을 방문했다는 한 40대 여성은 "쉬인이라는 브랜드는 처음 들어봤지만 제품이 싼 것 같다"며 "하지만 우리 세대가 입을 만한 옷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여행 중 성수동을 방문해 우연히 쉬인 매장에 발걸음 했다는 일본인 모녀도 "쉬인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한국 옷가게를 구경하려고 매장에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쉬인의 첫 팝업스토어는 2층 규모로 마련됐다. 1층에는 사진을 찍을만한 공간을 더한 작은 쇼룸이 있었다. 주 전시 공간인 2층에는 쉬인의 기본 브랜드 '이지웨어', 서브 브랜드 '데이지', 스포츠웨어라인 '글로우모드' 등의 제품들을 행거에 걸어 선보이고 있었다.
제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블록코어, 발레코어, 고프코어, 테니스코어 등 최근 유행하는 모든 스타일의 제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한쪽에는 오피스룩에 어울릴 법한 블라우스가, 다른 한쪽에는 스포티한 농구 유니폼이 걸려있는 식이었다. 쉬인 제품만으로 다양한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졌다.
품질·가격 나쁘진 않은데...
특히 쉬인이 초저가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제품이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다. 6000원 짜리 셔츠는 물론 2만원대 청바지까지 있었다. 팝업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제품 중 3만원을 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부 제품은 박음질이나 마감 등에서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스페인 출신으로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여성 방문객은 "쉬인은 유럽에서 정말 유명한 회사"라며 "품질은 상품에 따라,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달라보이는데 '데이지'의 품질은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 방문객은 "청바지를 입어봤다"며 "양쪽 재봉이 달랐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감수하고 입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고객은 실제로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팝업스토어에서 판매중인 제품에 부착된 태그에는 제품명과 가격, QR코드가 포함돼 있었다. 소재 정보, 세탁 방법 등 자세한 상품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쉬인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쉬인 팝업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제품의 가격이 웹사이트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쉬인 이지웨어의 '브라질 프린트 튜브탑'의 경우 팝업스토어에서는 6500원이었지만 웹사이트에서는 5850원이었다. 쉬인 데이지의 '별과 레터 프린트가 있는 여성용 쇼트 크롭 티셔츠'의 경우 웹사이트에서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지만 팝업스토어에서는 정가 8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또 팝업스토어 제품 가격에는 부가세가 포함되지 않아, 계산 시에는 10% 부가세가 부과된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결국 팝업스토어 제품이 웹사이트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팝업스토어는 쉬인의 제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일 뿐 실제 판매는 웹사이트에서 이뤄지도록 유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패스트 패션 1위
쉬인은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패션 이커머스 기업이다. 2012년 중국 난징에서 설립된 '중국 태생' 기업이지만 2021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후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글로벌 리테일 기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쉬인은 흔히 국내에서 알리, 테무와 같은 중국 이커머스와 하나로 묶이지만 사업 모델은 유니클로, 자라, H&M 등 '패스트 패션' 기업과 더 가깝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생산해 빠르게 매장에서 판매하는 사업 형태를 말한다. 쉬인은 이보다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 패션으로 분류된다.
쉬인은 SNS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후 그때그때 유행하는 디자인을 곧바로 옷에 적용해 판매한다. 쉬인은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하지 않아 더 빠르게 웹사이트에 신제품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 제품도 다른 패스트 패션 기업보다 훨씬 저렴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쉬인은 지난해 기준 하루 최대 1만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생산하고 있다. 쉬인 제품(SKU)의 평균 가격은 14달러로 H&M(26달러), 자라(34달러)보다 저렴하다.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쉬인은 지난해 매출 450억달러를 거두며 자라, H&M을 제치고 패스트 패션 1위에 올랐다.
쉬인은 지난해부터 의류 외에도 모든 상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유럽 등에 마켓플레이스를 개설하고 외부 판매자를 통해 여러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 형태다. 이 때문에 쉬인은 해외에서 아마존, 테무 등의 경쟁 상대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SPA 브랜드뿐만 아니라 이커머스업계까지 쉬인을 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쉬인의 국내 진출 파급력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쉬인은 자체 패션 브랜드를 통해 저렴한 의류 제품을 갖고 있어 일반 이커머스 기업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췄다"며 "알리, 테무보다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한 패션 버티컬 플랫폼 관계자는 "쉬인이 초저가 패션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주 고객층은 10대부터 20대 초반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내 패션 시장의 주 소비층은 아니기 때문에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SPA 브랜드 관계자도 "최근 고물가 때문에 저렴한 옷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품질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며 "중국 기업 특성상 품질 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장 불발?
일각에서는 쉬인이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상장'을 들기도 한다. 당장 한국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한국을 기반으로 아시아 내 사업을 키우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패션을 선도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K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쉬인은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사실상 미국 상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런던 증시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유럽의 정치권에서 쉬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쉬인이 강제 노역, 환경 오염 등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되면서다.
최근 스위스의 NGO 퍼블릭 아이(Public Eye)는 쉬인의 중국 남부 제조공장 일부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고 저임금을 받는다고 폭로했다. 쉬인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영국에서는 한 인권 단체가 쉬인의 면 공급업체 중 일부가 위구르 족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있다며 상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쉬인과 같은 울트라 패션 브랜드의 탄소 배출이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쉬인의 많은 제품은 저렴한 폴리에스터 원단을 사용한다. 이런 여러 논란 때문에 쉬인이 런던 증시 상장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쉬인에 대한 제재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쉬인이 아시아 시장 내 영향력을 확보할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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