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참사, 참사… ‘뉴스 트리아지’ 매기는 자괴감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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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코로나19 1차 유행을 막 넘긴 때였다.
의료계 인사들이 모인 한 전문가 포럼에 취재 갔다가 낯선 낱말을 하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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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코로나19 1차 유행을 막 넘긴 때였다. 의료계 인사들이 모인 한 전문가 포럼에 취재 갔다가 낯선 낱말을 하나 들었다. “웬만하면 얘기 안 하고 싶지만… 전시에 준하는 트리아지를 준비는 해야 합니다.” ‘트리아지가 뭐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해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트리아지(triage):응급 환자 분류.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코로나19에 대해 처음으로 실체적 공포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로부터 딱 열흘 뒤 〈뉴욕타임스〉에서 ‘살릴 가능성이 더 높은 젊고 건강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나이 들고 증세가 심한 노인들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뺐다’는 이탈리아 한 병원 중환자실 의사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 끔찍한 현장은 곧이어 2차, 3차, 4차 유행 파도가 덮친 한국에서도 펼쳐졌다. 수많은 구급대원, 공무원, 의사, 간호사들이 밀려드는 확진자와 중환자 앞에서 구급차, 병상, 인공호흡기, 에크모 같은 한정된 자원들을 두고 생명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했다.
주간지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문득 ‘트리아지’라는 낱말이 다시 떠올랐다. 최근 몇 주 동안 체크했고 고민했던 기사 아이템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화성 아리셀 화재, 동대문구 아파트 건설현장 화재, 전주 제지공장 청년 노동자 사망, 하남시 교제살인, 시청역 자동차 사고, 안산 학원 화장실 여고생 흉기 피습, 공주정수장 직원 사망, 부산시교육청 장학사 사망…. 모두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단면을 담은 중요하고도 가슴 아픈 뉴스들이지만, 한정된 지면과 취재 인력을 핑계로 뉴스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건은 희생자 수가 너무 많으니 크게 넣었지만, 어떤 건 아무래도 취재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아이템을 ‘키우지’ 못했다. 어떤 아이템은 중요하지만 너무 반복 보도돼서 좀 머뭇거리기도 했고, 어떤 기사는 주간지 특성상 다음 주가 되면 이미 ‘묻힌’ 뒤 일 것 같아 담아내지 못했다.
이번 7~8월 가동할 아이템을 궁리하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오송역 참사 1주기, 채 상병 1주기, 서이초 사건 1주기… ‘챙길 참사가 너무 많네’라며 마음속으로 분류와 소거 작업을 하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밀려드는 환자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전쟁터 의사처럼, 나는 밀려드는 각종 참사 소식들 속에서 다소 무감각하게 ‘뉴스의 트리아지’를 매기고 있었다. 희생자의 규모와 면면을 따지면서 ‘이게 얼마나 길게 갈 이슈인가’ 따위를 계산하는 나 자신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재난 참사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언론인으로서도 한 시민으로서도 길을 잃어가는 시대다. 내 앞에 주어진 일이라 여기며 자기합리화를 해나가다가도 멈칫하는 순간이 잦아진다. 전쟁터 같은 현실 속에서 답 없는 이런 자괴감을 겪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 같아, 무엄하게도 편지를 통해 독자와 나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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